단골
『 한자는 우리 글이다』란 책에 단골에 대한 얘기가 있다.
그 말의 유래에 대한 내용인데, 진짜인지 개인적 사견인지 잘 모르겠다. 일단 네이버 검색으로는 지은이 박문기가 단골의 한자로 쓴 '壇骨'은 검색되지 않는다.
단골손님이니 단골집을 말할 때 쓰는 그 단골 말이다. 내용을 보면 처음 '단골'이란 말은 '사물놀이패'나 '소리꾼'. '무당'을 복합적으로 뜻함인 듯 하다. 암튼, 내용이나 한 번 보자.
애초에 스승이란, 단지 글을 가르치는 어른이 아니고 선과 악의 구별을 알려주고 질병을 고쳐주며,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신통한 능력을 지닌 존재로 여겼었다. 당나라를 불러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하고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골품제도(骨品制度)를 강화하여 이러한 스승의 직분을 가장 미천한 계급으로 전락시켰다.
즉 김씨 왕족끼리 혼인하여 낳은 자식을 성골(聖骨)이라 했고, 왕족과 귀족 사이에서 낳은 자식을 진골(眞骨)이라 했으며, 신라 사람을 우대하여 범골(凡骨)이라 했으며, 백제. 고구려 유민을 일컬어 단골(壇骨)이라 비칭 했다. 성골이라야 왕이 될 수 있고, 진골이라야 벼슬을 할 수 있었고, 범골이라야 사람 행세할 수 있었다.
단골이란 단군의 뼈를 지녔다는 뜻으로 그 하는 일이 옛 스승의 업을 이어 사물(四物. 사물놀이를 말하는 듯)로써 천지만물을 고동시키고 능히 귀신과 화합하여 우리 조상신께 안녕과 복을 비는 것이었다. 그런데 신라는 이들을 천대하고 대신 객귀(불교를 말하는 듯)에게 복을 빌었던 것이다. 신라 뿐 아니라 고려. 조선. 근래에 이르기까지 단골은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고 살아야 했다.
그러나 단골은 결코 자신의 신분을 숨기거나 직업을 바꾸지 않았다. 혹시 멀리 나갈 일이 있을 때 누군가가 자신의 신분을 모르고 존칭을 쓰면 즉시 ' 쇤네 단골입니다. 말씀 낮추십시오' 하고 말했다 한다. 이들은 수천 년 동안 멸시와 천대를 받고 살면서도 그렇게 직업을 바꾸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오로지 한 집만을 상대하고 옛 정을 변치 않으면 단골집. 단골손님 등으로 일컫는 미칭이 전해 오기도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국악계에서 무슨무슨 문화재라 일컫는 사람들은 거의 다 이 단골의 후예들이고 또한 대부분 전라도 사람들이다. 경상도에서 광대라는 말은 있어도 단골이란 말은 없다. 이쪽 사람들은 오랫동안 범골(凡骨)로서 우대를 받았기에 단골의 역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뒤로 내용이 조금 더 이어지는데 여기서 끊기로 하자. 조금 지역감정이 나타나 있다. 어쨌든 알고자 하는 건 단골이란 말의 유래였으니 이 내용이 맞든 안 맞든 그렇듯 하긴 하다.
위에서 말하는 스승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스승과는 달리 '신(조상신)과 교감하는 자'를 말함 같고, 신라의 신분제도는 진골과 성골, 그리고 그 아래 6두품을 두었다. 일반 평민은 범골로 불린 게 맞지만 고구려. 백제 유민을 단골로 불렀다는 자료는 아직 못 찾았다. 그리고 무당 중에는 늘 정하여 쓰는 무당을 '단골무당'이라 하는데 단골의 어원을 예서 찾는 자들도 있다.
◈ 무(巫)는 무당(女)과 박수(男)로 나뉘고, 무당은 숙련된 대무당(大巫. 또는 단골무당)과 서툴고 미숙
한 선무당(生巫)으로 구분된다. 아래 내용은 네이버에서 발췌했다.
- 육당 최남선은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에서,「단군은 무당의 일명인 '당굴'의 사음(寫音)이고,
당굴은 몽고어의 '탱그리(Tengri)'와 공통된 말이며, 마한의 '천군(天君)'도 이와 유사한 말이다. 그리
고 왕검(王儉)은 고유명사가 아닌 '엉큼'의 대역인 대인(大人). 신성인(神聖人)의 존호를 뜻한다.」
단골의 어원 (1) 무당은 신과 인간을 연결시킬 수 있는 중개자로서 聖人이다. 태초부터 무당이 있었다. 무당은 전세계에 있고 우리나라에도 있다. 전세계적으로 무당은 제사장이요, 주술사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인류학자 D. Banzaroff는 무당의 본업을 ①司祭 ②巫醫 ③占卜者라고 규정해놓고 있다. 이러한 기능은 우리나라 무당에서도 그대로 찾아볼 수 있다. 巫」字는 工字와 人字 2개가 결합된 구조이다. 사람 인(人)자 2개는 남자와 여자를 가리킨다. 무당도 남자무당을 격(覡)이라 하고 여자무당은 무(巫)라 하였다. 巫는 영적으로 하늘과 땅 사이를 영적으로 통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무는 하늘과 땅사이를 오가는 방식이 무당마다 다를 뿐이지 기본적으로 신에 의탁하거나 신을 부리는 교감방식은 같다. 천계는 신의 세계요 지상계는 인간의 세계이다. 천계의 신과 인간이 내통할 수 있는 방법은 신과 인간을 연결시킬 수 있는 중개자가 필요하다. 즉 天神과 인간을 연결시키는 종교전문가들은 모두가 巫堂이다. 무당은 신성체험을 하기 때문에 聖人이다. 신성체험을 전문적인 직업으로 하는 종교전문가는 모두가 무당이요, 성직자라 할 수 있다. 무당을 미신집단으로 규정하여 말살하려는 사람들은 일제총독부의 행동대원이나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무당들이 미신의 대상으로 탄압하기 시작한 때가 일제 시대였기 때문이다. 무속신앙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민속신앙은 모조리「미신의 덫」에 걸려 청산과 타파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무당의 미신취급은 인권말살이요, 무차별 폭력이다. 조선시대에 음사로 탄압을 받아오면서도 문화의 토양으로 무속신앙은 양성되어왔다. 그러나 일제시기에 본격적으로 핍박을 받아왔고 해방이후 50년간 빨갱이보다 더 혹독하게 탄압 받아온 사람들이 무당이다. 일본은 한국의 정신문화를 파괴 해체시킬 목적으로 집요하게 무속신앙을 전근대적이고 미개하고 사람을 홀리는 신앙행위로 못박고 한국인들에게 스스로 청산하도록 세뇌교육을 시켜왔다. (2) 단군은 정치적 우두머리이면서 종교적 사제 역할을 하는 무당이었다. 그리고 무당을 부르는 말은 단골 또는 당골이라 불렸다. 단군은 북방의 알타이어 계통에서 무당을 의미하는 '텡그리'라는 단어에서 온 보통명사로서 정치적 우두머리이면서 종교적 사제를 의미하였다. 신라의 왕위 가운데 남해차차웅에서 보여지는 次次雄은 慈充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것은 무당을 뜻하는 방언이었다. 즉 신라시대에도 왕이 또한 무당이었다. 이렇듯 단군은 정치적 우두머리이면서 종교적 사제 역할을 하는 무당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호남지방에서 무당을 부르는 말인 '단골', '당골' 또는 '당골네' 등은 또한 텡그리에 어원한다고 한다. (3) 마을이나 개인들은 늘 같은 무당을 불러왔고 단골판 또는 단골관계가 설립했는데 오늘날 단골집이라는 말이 파생되었다. 무당은 의례를 주재하며 종교적 행사를 지시하고, 경제적으로는 마을에 의존하였다. 즉 마을 사람들은 경제적 후원자이고, 단골은 제의를 맡는 종교적 기능자이다. 단골판은 한 개, 또는 몇 개의 마을을 소유할 수도 있고, 특정 성씨(姓氏)와도 관계를 맺어 소위 단골관계가 맺어지기도 하였다. 그래서 무당을 부를 때 늘 같은 무당을 불렀고 이렇게 정해 놓고 불러다 쓰는 무당을 '단골' 또는 '당골'이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유래하여 늘 정해놓고 찾아가는 가게를 가리켜 '단골집'이라고 하게된 것이다.
*저 어릴적에 서울에서도 "당골네"가 있었던 기억이 있어요.
애들이 무섭다고 그 집에 잘 가지 않았지요.
울 아버지 말씀을 듣자면 시골에 일제시대때에 '군당골네, 면당골네.리당골네' 가 있었다네요.
일종의 동네제사장 노릇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길흉사에 대한 조언을 한것이라고.....
단군> 단군네> 단골네. 당골네> 단골. 당골...... 이렇게 변하지 않았을까요?
위 글에서 처럼 늘 찾아가고오니까 단골이라는 말이고....
어느 글에서 본 것으로
신라시대에 성골, 진골 그러며 골품이 있었는데 '단골'이라는 것도 있었데요.
시대가 변하여도 단군을 믿고 지키는 위글과 같은 '당골네' 일 수도 있고...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듯이 한번 관계 맺으면 변치 않는 사람
즉 우리 고유의 단군정신을 지키는 사람을 단골이라고 했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아무튼 지금 흔히 얘기하는 단골의 의미와 같다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