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속한 님아~
내면의 풍족함을 추구 하였던 우리 민족의 가락에는 한, 그리움, 사랑 등
겉으로 표현하지 못한 은근함과 삭힘이 스며 들어 있습니다.
일명 그늘이라 하여 가락에 이 그늘이 없으면 명창이라 할 수 없다지요.
내면에 쌓이고 쌓인 것을 삭히고 삭혀 표출 하는 소리....
맑지 않으나 탁하지 않으며
삭힘의 끝에 잔잔히 묻어 나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 하는 것이지요.
이 삭힘이 생활 속에서도 살아 있는 것이
고추장, 된장, 젓갈.. 김치등 발효 음식 문화도 그 일부인 것이지요.
분출 시키기 보다는 삭힘으로
음양의 극단적임이 아닌 음양이 중화 되는 삭힘의 철학을 알고 산 것이지요.
한(恨) 많은 민족이라서 한민족이 아니지만
환(桓)한(밝은) 민족 한민족이라 해야겠으나(환(桓)을 한이라고도 발음)
한이 많이 쌓여 있다고 볼수 있겠지요.
한오백년 살자면서 부르는 우리의 한은 과연 무엇일까?
한많은 이세상 야속한 님아
정을 두고 몸만 가니 눈물이 나네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고...
한오백년 살자는데 웬 성화요~~~
님에 대해 서린 한이 얼마나 많으면 한 오백년을 살아야 풀어질까?
이 세상사 그런 님은 없을 것 같은데....우리 민족의 한에 대한 얘기를 담은 노래......
우리네의 한은
가슴 속 깊이 수천년을 내려오며 담겨 있는
이 우리들의 한은 짧은 이생에서 이루지 못한
자기 영혼의 성장, 자기 성찰의 이룸, 하느님과 하나됨 십리를 못가고 발병이 난 우리네 모습에 따른(아리랑)
완성의 의미 '십리"를 못가고 이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움 완성 되려는 애끊는 소망, 애절한 마음을
한마디 단어 " 한 " 이라고 표현한 것은 아닐까요?
칠성단을 두고 님 생겨 달라고 비나이다
자기완성을 위해서 수만 겁을 거듭 태어나도 이루지 못한
님(자기완성) 생겨 달라고 비나이다.
우리 민족이 신성시 한 북두칠성의 칠성신을 모신 곳 칠성단장독대에 정한수 떠 놓고 빌면 거기도 칠성단이 되는 것이지요.형식, 의식도 중요 하지만 생각이 우선이라 거기가 칠성단이라면 칠성단이 되는 것이지요.
청춘에 짓밟힌 애끓는 사랑
삶에 빠져 이루지 못한 사랑
삶과 청춘에 묻혀서 이루지 못한 우리의 바램
정를 두고 몸만 가니 눈물이 나네
아쉬움을 남기고 몸은 가야 하니 눈물이 난다
이생에서 한을 풀지 못하고 몸은 스러지니 눈물이 날 수 밖에....
아무렴 그렇지 그렇지 말고
어쩔수 없이 이생에 이루지 못하여 포기 할 수 밖에 없으니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체념의 소리 한오백년 살면 다 이룰수 있을 것 같은데....
애잔하게 묻어 나는 아쉬움
한오백년 살자는데 웬 성화요~~~
이루지 못한 자기완성, 깨달음에 대한 한을
한오백년 님(하느님,자연)과 같이 하면 풀 수 있을 것 같은데......
한 많은 이세상 야속한 님아......................
이승과 저승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사는 우리가 한~ 오백년쯤 사는 것이야 일도 아니지요.
그런데 문제는 다시 태어 날 때 마다 그 전의 삶을 잊고 태어 난다는 거지요.
그래서 "자신을 알라"는 게 이전에 나를 즉 전의 살았던 나를 찾으라는 소리가 되기도 하지요
용왕, 산신령, 칠성신을 우리 곁에 두고 살았던 우리 민족은 자연을 이루는 하늘과 바다와 땅을 다스리는 주체를 칠성신과 용왕과 산신령으로 의인화 하여 같이 어우러져 살았더랍니다.
이것이 어찌 미신이라고 격하 시킬 일 이겠습니까?
자연을 의인화한 대상으로 해서 같이 산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지요.
(자연친화적 삶)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모시고 살았지만, 일신(體)이 삼신(用)이라고....
체용의 이치에 따라 작용은 삼신으로(삼신할매) 나아가 다신으로 작용 한다고 여겼지요.
그래서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것에 신이 깃들여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같이 산 것이지요.즉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라 하겠지요
일신이 삼신이고 삼신이 일신이라, 일신인 하나님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일부로 사는 내가 하나님이 될수 있는 거지요, 즉 인내천(人乃天)
내가 우주자연의 주인인 하나님이니까 자연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게 되겠지요.
그렇게 사는 사람이 홍익인간이 되는거지요.
모든게 내것이니까 아끼고 사랑하고 그렇게 사는 거지요.
남의 것이 아니고 모두가 내 것이고
그러니 일이 벌어지면 네탓이 아니고 내탓이라 여길수 밖에 없지 않겠지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어떻게 말과 생각과 행동이 하나 되게 사느냐가 어려운 문제이지요.
느끼고 체험 하는 삶이 도(道) 즉 삶의 길이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께 고마움을 표시하는 의식으로 천제를 지냈지요. 10월달에...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신라의 가배 등이 제천행사의 일종이지요.
강화도 첨성단 같은 곳이 이 천제를 지낸 곳이고
산행 하다보면 볼수 있는 솟대가 천제를 지내는 신성한 땅이라는 표시인 것입니다.
이 새가 몸통하나에 다리가 셋인 삼족오(태양을 물고 다니는) 로
일신이 삼신이라는 걸 나타내고 있지요
하나님이 우리 생명을 내는데 삼신할머니를 통해서 내는 것이지요.
삼신할머니가 아들이나 딸을 점지해야 애를 낳을수 있다고 살아 왔잖아요.
이 삼신 할매가 엉덩이를 때려 내보내기 때문에 몽고반점이 생긴 것이라고 .....
옛날에 기록할 방편이 별로 없으니 얘기로 만들어 전달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애들 앉혀놓고 옛날에 옛날에 삼신할매가.... 이런 식으로요.
생활의 일부가 되어 내려 온것입니다.
외래 문물이 들어 오면서 점점더 많이 우리것을 잃고
더더욱 우리 고유사상을 잃어 가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