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풀이를 듣다가....
이 뭐하는 노래인가 해서 성주풀이를 찾아 보게 되었네요
알고 보니 성주단지가 신줏단지 단지라
그래서....
우리가 애지중지 중요하게 모시는것을 신줏단지 모시듯이 한다는데
이 신줏단지가 뭔가 알아 봤지요?
대충 아래 가져온 글대로예요.
신줏단지 안에 뭘 모셔 놓았는지 아시나요.
그해 수확한 햇곡식이지요.
농경사회를 이뤄 정착 하면서 중요한 것이 곡식인거지요.
먹고 사는 것에 직결 되니까요.
먹을게 부족한 시절이라 먹다 보면 다음해 농사 지을 씨앗까지 다 먹지 않겠나요.
그래서 수확하면 제일 먼저 신줏단지에 씨나락을 모셔 놓은 것이 아닐까요?
무지 중요한 것으로 의미를 부여 해 놓아야 꺼내 먹지 않겠지요.
그리고 해가 바뀌면 새로 넣어 놓고.....
한마디로 비상식량 특히 씨나락을 모셔 놓았다고 봐도 되겠지요.
농사꾼은 굶어 죽더라도 種子(씨앗)를 베고 죽는다 말이 있잖아요.
굶어 죽을 지경이라도 농사 지을 씨나락은 먹지 않는다는데......
씨나락은 다음해 쓰니까 신줏단지에 들어간 그 곡식은 아니겠으나
비슷한 의미로 비상사태를 대비하여 신줏단지에 보관하고 애지중지 한 것 아니겠느냐는 겁니다.
이런 걸 귀신이 까먹으면 안되고,까먹을 수도 없고...... ㅎ ㅎ
쓰다 보니 기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가 된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쌍덕잎식물 쥐손이풀목 현삼과의 한해살이풀 /성주풀이래요
성주풀이
무당이 성주받이를 할 때 성주의 내력을 읊는 서사무가(敍事巫歌).
집안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할 때, 새로 집을 지었을 때, 신년에 안택(安宅)할 때, 그리고 걸립패 등이 성주고사를 지낼 때 부르는 무가이다.
성주고사에서 소리꾼이 부르는 성주풀이는 중중모리·자진모리장단으로 톱질타령·노적령·지경다지기·박물가 등 여러 소리를 부른다. 굿거리장단에 경토리로 된 유절무가(有節巫歌)는 민요화되어 남도민요 《성주풀이》가 되었다. - 야후백과사전 -
성주단지
성주는 집을 지키는 신이다.
성주풀이의 "와가에도 성주요, 초가에도 성주요, 가지막에도 성주"라는 말대로 어떤 집에든지 성주가 있다. 그는 인간에게 집을 짓고 연장을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고 무가(巫歌)에서 전한다.
집 전체를 관장하는 성주신은 모든 가택신을 대표하며 그들을 거느리는 최고의 신으로서, 가장(그 집의 호주 즉 아버지)을 보호하며 가족과 가문 전체의 길흉화복을 관장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성주신의 위치 때문에 성주신은 집의 구조 중 가장 중심인 대청마루에 모셔졌다.
옛적에는 관청을 마루라 일렀다. '대청'이라는 말의 '청'에는 '관청', '중앙청' 등의 용례처럼 정사를 돌보는 데라는 뜻이 들어있다.
신라 17대 내물왕부터 22대 지증왕에 이르기까지 임금의 뜻으로 쓴 마립간(麻立干)이라는 말도 이에서 왔다. 우리말 '마루'도 '산마루', '지붕마루', '마루턱'처럼 가장 높은 데를 가리킨다.
대청(마루)은 성주의 혼이 머무는 신성한 영역으로 집의 실질적인 중심에 위치하며 명절에는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쓰인다.
매년 가을에 햇곡식이 나오면 성주단지에서 낡은 곡식을 쏟고 햇곡식을 갈아 넣음으로써 그 집의 평안함을 기원하였다.
성주의 신체를 모신 성주단지는 대주(垈主)의 대가 바뀌면 새로 장만한다. "성주단지와 대주는 동갑" 이라는 말은 이에서 왔다. 또 "성주는 대주 믿고 대주는 성주 믿는다"는 말도 있다. 따라서 호주가 죽더라도 상례가 끝날 때까지는 성주단지를 치우거나 쌀에 손을 대지 않는다.
성주는 집을 새로 짓거나 살림을 따로 나거나 호주가 죽을 때에만 새로 받드는 것이다.
신줏단지
[명사]〖민속〗신주를 모시는 그릇. 보통 장손의 집안에서 오지항아리나 대바구니 따위에 조상의 이름을 써 넣어 안방의 시렁 위에 모셔 두고 위한다. -네이버 국어사전 -
신주단지
신주단지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이기도 했습니다.
농사를 근본으로 한 우리 조상님들은 씨앗이 아주 중요했다고 합니다.
그해 가을 추수를 하면 처음 추수한것을 작은 단지에 안웅큼 또는 조금 더 넣어서 한지로 밀봉한뒤 쥐나 해충이 오지 못하는 안방의 구석위 선반이나 따로 만든 곳에다가 올려놓았습니다.
이것이 처음 추수한것을 신들에게 바친다는 의미로 그렇게 올려 놓았습니다.
보통 쓰지는 않지만요,다음해 농사지을려 남겨놓은 씨앗들이 없어지거나 하면 신주단지에 있는 곡식을 썼습니다. 할머니나 어머니들은 그것에다가 기도도하고 했다고 하네요,
[쌀사랑 생명사랑] 우리민족과 쌀 | |||||
우리 조상들은 집을 다스리는 신을 성주대감이라고 일컬었다. 대청 한구석에는 성주단지 또는 신주단지로 불리는 쌀 항아리를 고이 모셔놓았다. 쌀을 신성시한 조상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주몽이 큰 뜻을 품고 고구려를 세우기 위해 북부여 땅을 떠날 때 어머니 유화부인은 곡식의 씨앗을 전해준다. 신화 속에서 주몽의 어머니는 농사를 관장하는 곡모신(穀母神)으로 표현된다. 시집가는 신부의 가마 속 방석 아래에는 으레 곡식 낟알을 깔았다. 유화부인이 그랬던 것처럼 한 집안의 생명줄을 지켜나갈 볍씨 관리를 신부의 가장 큰 책임으로 여겼던 것이다. 쌀은 곧 한민족의 역사와 함께 하며 생활 속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도심을 벗어나면 한반도 어느 곳에서나 논을 볼 수 있다. 물이 있는 곳이면 으레 자투리 땅까지 벼를 심는다. 먹고 살기 힘들어 만주와 러시아로 떠났던 유민들은 그곳에서도 거친 땅을 일궈 쌀농사를 지으며 한민족의 생명력을 이어갔다. -인도, 중국 거쳐 전파- 벼는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의 ‘브리히(Vrihi)’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남부지방에서는 ‘니(Ni)’ ‘누안(Nuan)’ 등으로 불렸다. 이는 우리말 ‘논’과 비슷하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에서는 벼를 ‘바디(Badi)’ ‘빈히(Binhi)’ 등으로 부르고 있어 우리와 유사성이 있다. 쌀도 고대 인도어 ‘사리(Sari)’를 어원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쌀을 뜻하는 한자 ‘미(米)’는 벼이삭을 본뜬 상형문자다. 일부에서는 ‘米’자를 ‘八+十+八’로 분해, 88차례나 손길이 가야 하는 쌀농사의 특성을 표현한 글자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쌀사랑범국민운동본부는 8월18일을 쌀의 날로 정하고 있다. 한반도에 벼가 전해진 시기는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6,000~7,000년 전쯤으로 추정된다. 북쪽을 통해 들어온 쌀농사는 남부로 퍼졌고, 농사 조건이 좋은 영·호남 지방에서 발달했다. 1988년 충북 청원군 소로리 구석기유적 토탄층에서 발견된 볍씨는 1만년 이상 된 것으로 분석돼 쌀농사를 짓기 전부터 한반도에서 야생벼를 채집해 먹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쌀은 임금의 하사품- 서기 330년쯤 만들어진 대규모 저수지인 김제 벽골제는 당시 백제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벼농사를 장려하기 위해 농업용수 확보에 노력했다는 증거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이에 앞서 백제 문루왕이 즉위 6년(32년)에 명을 내려 논을 만들게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쌀밥은 통일신라시대 이후 철제 농기구 사용이 보편화하면서 한반도 전역에 퍼졌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의 ‘북학의’는 삼국시대 고구려에는 논이 없었고, 통일신라 이후 고구려 남부 사람들도 쌀밥맛을 봤다고 설명하고 있다. 건국 초기부터 농본주의 경제정책을 폈던 조선시대에 쌀은 곧 정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종 때 전라·경상·충청도 땅이 가장 기름져 상등으로 분류하는 등 이미 전국의 쌀농사 여건과 생산량을 파악했다. 선조 이후에는 현물로 바치던 모든 공물을 미곡으로 환산해 내게 하는 납세제도인 대동법을 시행했다. 임금은 포상을 하거나 신하의 대소사에 쌀을 보내 축하와 위로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안호기기자 haho0@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