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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열차분야지도 - 원시연대추정
천상열차분야지도 - 실측연대추정 에서는 현존하는 태종석각본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원본의 제작연도를 추정해
보았습니다.
여기에서는, 측정치가 마지막으로 수정된 연도가 아닌, 석각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원형이 처음 만들어진 연도를
추정해 보려 합니다.
▣ 청동기 시대의 천문도 - 성혈
먼저, '천상열차분야지도' 에 앞선(B.C.3000), 또는 동시대의 별자리 석판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제시해봅니다.
왼쪽 사진들은, 위에서부터
전북 화순, 경남 함안, 충북 청원에 소재한
고인돌 내부에 소장되어 있던 석판입니다.
'제왕(帝王)의 학문' 이라고 불렸듯이
아무에게나 전수되지 않았던 천문지식이
무덤에 새겨 넣어진 것은, 무덤의 주인이
제왕의 위치였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삼국시대 중반 이후 고구려 무덤에 등장하는
별자리 벽화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입니다.
(일설에는 진시황의 무덤 천장에도 천문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청동기시대의 별자리 - 성혈 을 참조하시면 위 석판들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첫번째 연대추정에서는 하단부에 기재된 거극도로 볼 때 실측연대가 B.C.200 ~ A.D.100 정도라고 추정하면서,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제작자가 고구려인이 아닌 고조선이나 그를 계승한 부여인들이었을 개연성을 제시했습니다.
(고조선의 유민이 건국했다는 신라인이었을 수도 있겠으나, 수거성 실측의 전통이 끊긴 것으로 보아 최소한
기원 전.후 멸망한 나라로 보는 편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 적을 내용은, 그보다 전인 B.C.4000 이후 청동기 시대, 천상열차분야지도에 남아 있는 흔적입니다.
▣ 28수의 분포와 황도와 적도 위치의 변화 (Precession)
'세차운동 (Precession)' 은 별과 황도의 위치를 변화시키지는 않습니다만, 천구의 북극이 이동하면서 하늘의 적도 또한
그 위치를 바꿉니다.
다시 거극도에서부터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28수의 모든 수거성의 거극도의 값의 평균을 구해 봅니다.
91,89,97,108,108,120,118, 116,106,106,104,99,85,86, 77,80,72,74,78,84,94, 69,68,80,91,97,99,98 (총 28개 수거성)
92.6 가 되며, 거극도는 365.25 / 4 에서 약 91.5 이므로, 평균치가 천구의 적도에 1도 내외로 근접해 있는 것입니다.
무작위로 떠 있는 별들을 이은 것 치고는 상당히 인위적이어서, 28수와 수거성은 특정한 규정에 의해 만들어진
(한글이 자생적인 언어에 규칙을 부여하여 정리되었듯이) 별자리 체계였다고 생각됩니다.
28수 수거성의 위치는 어떤 원칙으로 정해졌을까요 ...
이들 수거성들은 대체로 적도를 따라 분포하면서도 기복이 있습니다.
(청룡, 백호는 주작.현무와는 달리 길게 뻗은 모양입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
그려진 선들 중
푸른 색이 청룡 7수,
흰 색이 백호 7수,
붉은 색이 주작 7수,
자주 색이 현무 7수입니다.
원의 중심에서
바깥 방향으로 나가는
선들의 수를 세어보면
모두 28개이며,
각 선과 선 사이는
28개의 별자리들이
주관하는 영역입니다.
중앙의 작은 원 바깥쪽에 두 개의 서로 교차하는 중간 원이 있습니다. 이 중 작은 원을 중심으로 하는 원이
천구의 적도이며, 중심에서 약간 어긋난 원이 황도 적도입니다.
28수를 잇는 선들도 전체적으로는 닫혀진 도형의 일부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중 몇 군데를 짚어봅니다.
다음 그림은 주작 칠수 중 정수 (쌍동이 자리) 의 수거성에서 귀수 (게자리) 의 수거성으로의 연결입니다.
귀수 - 정수의 수거성을 서로 이은 선이 적도가 아닌 황도를 따르고 있슴을 알 수 있습니다.
(○ 안에 있는 정수.귀수의 수거성은 황도와 하늘의 적도가 가장 멀리 떨어진 6시 근방에 위치합니다.)
정수에서 귀수를 지나면 황도와 떨어지면서 적도 근방의 류수.성수로 향합니다.
성수, 장수, 익수, 진수는 현재 적위 -10도 ~ -15도 정도에 위치하고 있어서, 하늘의 적도에도, 황도에도 맞지 않습니다.
적도좌표를 기준으로 본다면, 백호의 규수는 너무 높게, 청룡의 미수는 너무 낮은 위치에 있습니다.
그래서 달의 궤도인 '백도'를 따라 정해졌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한 달이 28일과 가깝다는 것도 그 근거 중 하나로 들고 있습니다.
그럴까요? 비록 28수로 달의 일주를 측정 한다고 하지만,
28수는 그 크기의 편차가 커서 별자리로는 대략의 날짜를 헤아릴 수 있을 뿐입니다.
그렇게 되면, 모처럼 28개로 나눈 보람이 없었겠죠. 게다가, 달의 궤도는 항상 같은 곳을 지나는 것도 아니라서 ...
서양의 '황도 12궁'이 황도를 따라 분포하는 것에 비해, 28수는 무원칙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생각마저 듭니다.
심지어, 자수와 삼수의 경우, 삼수 내부에 자수가 포함되어 있기까지 합니다.
분명 28수를 만든 데에는 원칙이 있었을 것입니다.
거극도가 측정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원 원년 근방에서는 주작의 성~진수는 대체로 적도 근방에서 적도에 평행하게
놓여져 있었습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B.C.2000 년 근방이 되면, 성-장-익-진의 수거성을 연결한 선들이 적도상에 분포하게 됩니다.
물론, 귀수-정수는 여전히 시간에 따라 크게 변경되지 않는 황도상에 있습니다.
성수와 진수의 수거성을 연결하는 선은 당시 하늘의 적도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백호 칠수의 규수 - 필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는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선입니다만, B.C. 2천 년 근방이 되면
하늘의 적도에 접근하면서 경사도 없어져 두 별자리의 수거성을 연결해 적도선을 얻을 수 있습니다.
28수는 이렇게, 황도와 적도를 오가며 두 개의 원을 표시하도록 만들어졌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그 시기는 B.C.2천 년
경으로 추정됩니다.
▣ 어째서 황도와 적도가 필요했을까 ...
적경.적위는 지구의 자전과, 황도는 지구의 공전과 관계있습니다.
그래서, 황도는 절기를 알기 위해, 적도는 시간과 동.서.남.북의 방위를 알아내기 위해 필요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들은 그 당시 시간을 나타내는 '시간표'로서 쓰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태양으로는 연중의 시기를, 남중하는 별자리로는 밤시간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엔 하늘의 적도를 따라 배열되어 있었으므로, 지형상의 위도나 방위를 구분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왜 이 정도로 정밀한 천문지도가 그 시대에 필요했을까요 ?
>> 천문은 하늘과 관련되어, 하늘이 부여한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 보다 정밀한 별자리가 필요했을 수 있습니다.
청동기 시대는 각 부족이 통합되어 통일국가를 이루는 시기인 만큼 더욱 그러했겠죠.
>> 계속되는 홍수도 이유가 됩니다. 높아져 가는 바다는 어쨌거나 밀물.썰물 등 해와 달과 깊은 관계가 있으니까요.
당시의 높아진 관심은 해와 달, 수.금.화.목.토의 오성과 별자리로 기울어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치수(治水)를 위해 해와 달의 운행의 관찰하기 위한 황도를 표시했던 것이겠죠.
무엇보다도, 농업과 어업의 발달로 태양과 달의 운행위치를 알아야 했을 것입니다. 태양력과 월력으로 일년 중의
절기로 농작의 시기를, 달의 위상으로 조수간만의 시기를 예측해야 했을 것입니다.
(비록 정서로 인정받진 못하고 있지만, '단군조선기'에서) 2세 단군 부루(扶婁) 12년 신지 귀기(貴己)가 칠회력
(七回歷)을 바친 것, 5세 단군 구을(丘乙)이 B.C.2096 년 갑자를 사용한 역서를 최초로 만든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B.C.2096 년은 을축, B.C.2097 년은 갑자년입니다. 육십갑자의 시작년도는 당연 갑자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연도로 보아, B.C.2097 년 시험을 거쳐 이듬해 공표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글도 그랬었습니다만 ...)
>> 또한, 갑작스럽게 넓어진 지역의 방향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 한 가지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해안선의 지형이
변해가는 바다나 실크로드의 사막, 평야에서 방향을 잃지 않고 이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확한 방향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했을 것입니다. 특히 4방의 기준이 되는 북쪽방향이 중요시 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천상열차분야지도'에는 많은 길잡이 별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시간과 공간의 길잡이
각 도수의 대표이며 기준 별자리인 28수를 살펴보기 전에, 이들 28수를 구분시켜 주는 사방신의 의미를 짚어보면서
이들 사방신이 처음 만들어진 때를 추정해봅니다.
[사방신의 상징적 의미에 따른 천구상의 위치]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상단부에 28수를 사방신 별로 더한 각도가 나옵니다.
동방 청룡7수 32성 합 75도
서방 백호7수 51성 합 80도
남방 주작7수 64성 합 112도
북방 현무7수 35성 합 98도 1/4
365도를 등분하고 있지 않으며, 대칭의 형태도 아닙니다.
(물론 적혀 있는 치수는 조선시대가 아닌, 하단에 적힌 B.C.100 년 추정 측정치를 기반으로 한 수치입니다.)
하지만, 그 중앙 부근에는 7수 중 4번째 별자리들이 위치하며,
각 사방신의 중앙에 위치한 방수, 묘수, 성수, 허수의 별자리들은 대략 서로 90도의 각을 이루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
천문류초를 보면, 앞부분에 사신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동방 창룡7수는, 봄을 맡아 다스리며, 동방을 다스립니다.
북방 현무7수는, 겨울을 맡아 다스리고, 북방을 다스립니다.
서방 백호7수는, 서해 및 서방을 다스립니다.
남방 주조7수는, 여름과 화기운을 다스리며, 남방을 다스립니다.
각 별자리와 계절의 관계가 들어맞는다면, 위의 별자리들은 다음의 시기에 해당되어야 합니다.
청룡,백호 ... 입춘~입하, 입추 ~ 입동
주작 ... 입하~입추
현무 ... 입동~입춘
춘.추분점, 동.하지에 관련하여 생각해봅니다.
현재의 추분점은 처녀자리의 스피카인 청룡의 '각'수로부터 주작의 '진'수 쪽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위의 4방신의 특성과 춘.추분, 동.하지의 특성을 고려할 때, 네 시점은 4방신과 짝을 이룹니다.
청룡.백호 ... 춘.추분
주작 ... 하지
현무 ... 동지
또한, 네 별자리의 중앙에 위치한 묘수, 성수, 방수, 허수는 각각 춘분, 하지, 추분, 동지의 위치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청룡, 백호 ... 춘분, 추분 ... 묘수, 방수
주작 ... 하지 ... 성수
현무 ... 동지 ... 허수
(청룡과 백호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만, 천구의 방향의 동.서의 혼동, 중국의 동쪽은 우리의 서쪽인 점 등을 고려하면,
이전에는 그 반대였을 가능성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백호'는 가을을 대표하는 별자리로 적혀있지 않습니다.)
태양이 천구의 적도 아랫쪽(남쪽)에서 위(북쪽)로 올라가는 부분이 묘수,
가장 북쪽에 있을 때가 성수,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부분이 방수,
가장 남쪽에 머무르는 부분이 허수가 됩니다.
그러한 시기를 추적해 보면, 그 시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기에서는 관할하는 도수가 아닌 관측되는 별자리 부분 만을 고려)
추분점이 '방'수에 들어오는 시기는 B.C.2300 ~ 2600년, 3백 년 간
추분점이 '묘'수에 들어오는 시기는 B.C.2150 ~ 2300년, 150 년 간
하지점이 '성'수에 들어오는 시기는 B.C.2200 ~ 1900년, 3백 년 간
동지점이 '허'수에 들어오는 시기는 B.C.1850년경 (이 때 허수는 정확히 남-북으로 정렬)
이 위치로 볼 때 현재 전해지는 28수의 대략의 위치가 정해진 것은 약 B.C 2천 년 무렵으로 생각됩니다.
위 '단군조선기' 기록 중,
2세 단군 부루(扶婁) 12년(B.C.2228년) 신지 귀기(貴己)가 칠회력(七回曆)과 구정도(邱井圖)를 바쳤다
의 구절을 생각해 보면, 7회(七回)의 문자가 사방으로 7개의 별자리가 분포하는 모양인 것으로 추정할 때, 칠회력의 내용은
4방신과 28수를 규정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구정(邱井)은, 구정(九井)의 다른 표기로, 구이족이었던
9개 제후국을 거극도와 주천도수의 가로, 세로 선으로 구분하여 나타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즉, '천상열차분야지도'에 그려진 28수와 지방별 분할의 전통이 여기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B.C.2182년 고조선 최초의 일식관측이 있었던 것도 당시의 해의 위치에 대한 관심을 반영해 주고 있습니다.
(만주 지방을 지나는 개기일식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위 네 시기는 겹쳐지지 않는 B.C.2600 ~ B.C.1850 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통치기간 같이 ...
우연일까요 ...? 그렇지 않다면, 그 시절 이미 세차운동을 측정하고 있었다는 것일지 ... 세차운동을 알고 있었다면,
28수를 적도상에 배치하지 않았을 텐데, 수천 년간 나라가 유지될 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
[ 방수와 묘수의 위치 ]
이 당시 방수(전갈자리의 머리 부분)의 동일한 간격으로 떨어져 있는 네 별이 차지하는 주천도수는 4도 정도로,
해질 무렵 남중하는 별과 해뜰 무렵 남중하는 별의 중앙을 관측하게 되면, 춘분 근방의 날짜를 1일 단위로 알 수 있습니다.
반대편의 묘수(플레이아데스) 또한, 2도가 되지 않는 주천도수를 갖고 있으므로, 같은 방법으로 추분 근방의 날짜를 정확히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 성수의 시간에 따른 정렬방향의 변경 ]
주작칠수의 중앙 별자리인 성수의 경우, B.C.2200년 경에 왼쪽에 놓이는 세 별을 모으면
대략 당시의 북쪽이 됩니다. (좌측 그림 참조)
즉, 성수(星宿)는, 그 자체가 북극을 가리키면서, 그 수거성은 천구의 적도이면서
하지점에 위치하는 것입니다.
태종석각본의 측정시기로 추정되는 B.C.100년 경, 성수는 기울어져 북극을 가르키지도 않고,
하지점으로부터도 멀어져 있습니다. (우측 그림 참조)
옛 전설에 의하면, 단수라는 물에는 단어라는 물고기가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물고기는 보통 하지 열흘 전 깊은 물 속에서 나와 강가에서 노닌다고 합니다.
그 단어가 '성수'를 지칭하는 것이었다면, 하지 열흘 전 깊은 물 속에서 나온다는 것은, 하지 열흘 전에 해가 지나간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하지에서 주천도수 10도 가량 차이나는 곳에 놓였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위 그림의 B.C.2200년의 시기가
위 전설이 생겨난 때라고 보아도 될 것 같네요.
[ 허수의 시간에 따른 정렬방향의 변경 ]
왼쪽은 별자리가 처음 만들어졌다고 추정되는 B.C.1850년의 허수,
오른쪽은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측정시기로 추정되는 B.C.100년의 허수입니다.
(윗쪽이 항상 정북입니다.)
왼쪽의 허수는, 남-북으로 정렬되는 외에도, 동지점과 정확히 일치함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전.후 수백년 간 허수는 대체로 비슷한 모양과 방향을 유지했을 것입니다.
[삼태성, 북두칠성, 견우.직녀성]
28수 외에, 태미원에 속한 삼태성(三台星)은 북두칠성 바깥에 세 쌍의 별이 길게 늘어서 있는 6개의 별로 된 별자리로,
서양 별자리로 큰 곰 자리의 발판 부근에 해당됩니다.
천문류초의 설명으로는 황제씨를 나타내는 황룡의 일부를 이루기도 합니다.
북두칠성과 삼태성이 고조선의 상징의 하나인 곰을
의미한다는 점은 우연일까요 ... ?
그림에 그어진 세로 선은 현재의 적경으로,
천문도가 만들어졌을 당시인 B.C.2000년 경의 북극은
윗쪽 방향이 되어, 적경은 수직 방향이 됩니다.
이름으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삼태성은 새 개의 별이 띠를 형성하여
북두칠성을 받쳐 들고 있습니다.
이 별자리는 북두칠성과 더불어 인간의 수명을 담당하는
매우 중요한 별자리로 여겨져 왔습니다.
북두칠성, 삼태성이 이렇게 중요히 여겨져 온 이유는 밝은 별들이 모여 있는 비교적 큰 별자리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북극, 즉, 방위를 찾을 수 있는 단서였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바다나 초원지대를 여행하던 당시의 사람들은 방위를 아는 것 자체가 생사를 결정하는 문제였을 것입니다.)
위 그림의 북극별자리와 북두칠성의 위치를 알면 북극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삼태성은 여섯 개의 별이 두 개씩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습니다. 이 세 쌍의 별들 중 중앙의 한 쌍으로부터
북두칠성 방향으로 수직이등분선을 긋게 되면, 그 방향은 대략 북쪽을 가리키는데,
그 방향은 B.C. 2400 ~ B.C. 2300년의 정북에 해당됩니다. '삼태성'이라는 이름은 이 때 붙여졌을 것입니다.
북두칠성에는 첫번째, 세번째, 다섯번째의 별이 세 모서리를 이루는 평행사변형꼴의 도형이 있으며, 이를
'선기옥형' 이라 부릅니다. 또한, 별을 관측하는 장치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나머지 한 모서리는 B.C.2,300년 경의 북극에 근접해 있습니다.
[ 견우, 직녀성 ]
널리 알려져 있는 견우, 직녀성도 방향을 찾는 지표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왼쪽 그림의 윗쪽 밝은 별이 직녀성, 아랫쪽 작은 별자리의 가장 위의 밝은 별이 견우성입니다.
견우성인 우수와 직녀성을 잇는 직선을 연장하면 대략 북쪽을 향합니다.
이 방향은 B.C. 2,000년 경의 정북에 해당됩니다.
칠석날과 까막까치의 관계로 보아, 고구려의 상징이 까마귀였던 것도 과거 고조선의 한 부족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었을 가능성을 나타내어 줍니다.
▣ 화석 별자리
현재로서는 큰 의미가 없는데 남아 있는 별자리들이 있습니다.
[ 천일, 태일 별자리 (아래 별자리 참조) ]
천일, 태일은 천제의 위치이며, 많은 신들을 부리며 많은 일들을 주관한다고 합니다.
그다지 밝지도 않은 두 별이 이렇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한 때 이들 주변을 북극이 지나갔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B.C.2200 년 경에는, 북극5성의 태자(가장 아랫쪽 별)와 북두칠성의 목부분(4번째 별)을 잇는 '대리' 가운데 쯤에
북극이 있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별은 천일, 태일 두 별이 되었겠죠.
[ 일, 월 별자리 ]
일 별자리는 방수(方宿) 옆에, 월 별자리는 묘수 옆에 있습니다.
이들 일(日), 월(月) 별자리가 남아 있는 것은,
당시의 방수, 묘수 두 별자리의 대응 관계 및 황도와 적도가 교차하는,
두 별자리의 위치를 나타내어 주고 있습니다.
(사진은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방수.일수 및 묘수.월수 부분입니다.)
묘수(昴宿)는, '좀생이 별', '간성(열십자 위에 날일자)', '스바루(일본명칭)' 등의 여러 이름이 알려져 있는 별입니다. 또한,
연초에 묘수와 달의 위치를 보고 당해의 풍흉을 점치기도 하죠.
[ 북극5성 ]
자미원 중심부에는 북극5성이라는 별자리가 있습니다.
이름으로 보고 추측한다면, 이 별자리는 천구의 북극에 위치해야 합니다.
삼국시대의 북극은 이 별자리의 4번째 ~ 5번째 별과 북두칠성 국자 머리부분 사이에 있었으며,
대략 고구려가 멸망하는 7백년 경이 이 별자리를 벗어납니다.
( 고구려 900년 멸망설이 여기에서 나왔을 수 있습니다. 부여의 사람들은 건국 9백년 후 북극이 다른 별자리로 이동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테니까요.)
다섯 별에는 각각 이름이 있습니다. 태자, 제왕, 서자, 후궁, 천추의 이름이며, 여기에서 '천추'라는 명칭 자체가
북극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북극성에도 같은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제왕'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이었을까요 ... ? 아마도 당시 그 행적이 구전되었을 1만 7천 년의 긴 역사 중에 이름을
남긴 위인들이었을 것입니다.
이 북극5성 별자리가 북극이 위치했기 때문에 북극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면, 각 별들은 서로 다른 5개 시기의
북극을 대표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북극은 이 별자리와 북두칠성 사이를 이동합니다. 그 시작점을 태자성 쪽으로 하여 제왕, 서자, 후궁, 천추의
순서대로 이동합니다.
그 시작되는 시기는 대략 B.C.3,000 년 경이 되며, B.C.2,333 년 경에는 제왕 별과 북두칠성 사이에 북극이 위치했습니다.
이 시기는 황제씨와 치우씨의 싸움이 있었다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왼쪽 그림은 북극 및 사보성입니다.
북극5성 별자리의 밝은 두 별은 서양 별자리로 본다면
작은곰자리의 일부가 됩니다.
현재의 북극성은 가장 왼쪽에 있는 희미한 별을 벗어나 '구진' 별자리로 건너간 상태입니다.
현재 다섯 별은 각각 3, 2.1, 4.3, 5.8, 6등급의 밝기입니다.
여기에서, 제일 마지막 별인 천추성은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 옆에는 4보성이라는 4개의 별로 된 별자리가 있는데,
그 위치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 혼란은 '천상열차분야지도'와 조선시대 때 다시 측정.제작된 '신법천문도'의 배치가 다른 점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 마지막 별은 북극의 이동에 따라 새로이 더해졌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서 계산했던 전체 별의 수 1,462 개가 365 1/4 의 4배 숫자보다 1개가 더 많은 것이 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사실이 있습니다.
만일 이 별자리가 최초의 '태자'로부터 시작되어 북극이 이동함에 따라 별이 덧붙여졌다면, 최소한 관측을 하면서
천문현상을 기록하고 별자리를 새로이 수정하는 지정된 단체가 있어서 B.C.3,000 년 으로부터 B.C.200 년 부근까지
계승되었어야 합니다. (북극5성의 마지막 별을 예측할 수 있는 시기가 이 때입니다.)
그 사이 중국에서는 변란이 많았고 왕조가 몇 번 씩 바뀌었으므로 별자리에 대한 기록이 일관되게 유지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로 미루어 볼 때, 가장 가능성 있는 나라는 고조선이 될 것입니다.
만일 고조선이 멸망하지 않았다면 이 별자리는 더 늘어났을까요?
[별자리의 겹침]
주작의 귀수와 류수는 천문도가 제작되었다고 추정되는 B.C.100 년에도 서로 동일 적경 상에서 겹쳐져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별자리가 같은 적경을 가지게 되면, 별자리를 나눈 의미가 없게 되겠죠.
이 별자리들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서로 떨어지게 되며, 동시에 멀리 떨어져 있는 정수와는
서로 접근하게 됩니다. 즉, 별자리들이 지정된 시기가 B.C.100년 보다 훨씬 이전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왼쪽)
[ <== B.C.2000년으로 접근할 때 북극성의 이동 방향 ]
백호의 자수는 삼수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서로 떨어지게 됩니다. (오른쪽)
(위 별자리 중 오른쪽)
▣ 별자리의 형태 변경 (Proper Motion)
별들은 세차운동 외에도 '고유운동(Proper Motion)'이라는 것을 합니다.
지구의 궤도가 아닌 실제 별들이 이동하는 것이죠.
이는 태양계와 해당 별과의 상대적인 운동에 의해 변화되는 것으로, 대부분 가까운 별일 수록 빠른 속도로
위치를 바꾸고 있습니다.
이들 고유운동은 현재의 이동 속도로 원래의 위치를 추정하며, 별들은 등속운동을 하고 있다고 가정합니다.
[ 자수 ]
현재 자수는 위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약간 기울어져 있습니다.
자수의 한자는 비율 비(比) 자와 각 각(角) 자로 되어 있어서, 본래는 정삼각형이었슴을 나타냅니다.
B.C.2300 년의 이 별자리는 천문류초의 모양대로 적도에 대해 기울어져 있었고, 정삼각형이었습니다.
(왼편 그림과 비교해 보면 삼각형의 모양과 각도가 다릅니다.
B.C.2300년의 자수는 각도.모양 모두 동일합니다.)
제 생각입니다만, 만일 자수가 정삼각형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면
다른 별자리들을 거느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결코 눈에 띄는 별자리가 아니니까요.
[ 하고 ]
우수에 속한 하고 별자리도 고유운동에 따라 모습이 바뀌었습니다.
이 별자리는 은 > 형에서 |형을 거쳐 현재는 < 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위의 별자리는 각각 현재, B.C.2000, B.C.3000 년의 하고의 모습입니다.
천문류초와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비교해 보면, 이들 모양 사이에서 혼동이 있습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반면, 천문류초에서는 > 모양을 하고 있는데, 대략 B.C.100년 경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조선 초기 복각시 '하고' 별자리가 수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장수 ]
왼쪽이 현재의 진수, 오른쪽이 B.C.2200년의 진수입니다.
천문류초와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진수의 형태는 좌할과 우할의 길이가
동일하게 표시되어, 오른쪽과 같은 형태입니다.
(두 별자리의 우측이 약간 차이가 있어서 혼동됩니다만, 그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좌할 부분은 과거로 갈 수록 길이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 기관 ]
- B.C.100 년 경이라면, 남쪽 하늘에 센타우르스와 남십자성이 보였습니다. 기관 별자리는 이들 별자리를 매우 닮았으며,
기관을 이들 별자리라고 했을 경우, B.C.2000 년 경이 되면, 좌측 하단부의 별이 알파 센터우리가 됩니다. 이후 이 별은
빠른 속도로 우측으로 이동하여, 원래의 모양은 깨어집니다.
▣ 기토라 고분의 별자리 추정연대
일본에서 발굴되었을 당시 내부에 그려진 사신도와 작은 천문도로 화제가 된 기토라 고분의 경우, 춘.추분점을 조사해
본 결과, 황도선이 B.C. 2,000년 경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천문도 원본, 아니면 또 다른 석판본의 황도선이 이와 동일했을 가능성, 즉, B.C. 2천년 경의 하늘을
담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왜 기토라 고분을 만든 사람들은 춘.추분점을 수정하지 않았는지가 의문입니다.)
이상의 사실은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잘 알려진 별자리들이 그 기원으로서 B.C.2,000 ~ B.C.3,000년의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뒷받침해줍니다.
▣ 단군 이전의 세계 ...
지금까지 천상열차분야지도에 남아 있는 B.C.2000 년 경의 흔적을 제시했습니다만, 그 이전의 시기에 대한
자취 역시 남겨 놓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북극오성'의 최초 B.C.3000 년이고요 ...
기원전 2천 8백 년 경에는 그 전 별자리들인 심수.필수.장수.위수가 유사한 형태로 춘.추분, 하.동지점에 있었습니다.
필수 B.C.3300 ~ B.C.2650
심수 B.C.3000 ~ B.C.2800
장수 B.C.3700 ~ B.C.2750
위수 B.C.2850 ~ B.C.2500
이는 이들 네 별자리가 먼저 생기고 5백 년 후 28수와 사신이 정해졌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단군 이전의 시대는
신시의 시대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는 신시 이전의 시대에 대한 여운도 남기고 있는데, 그것은, 단군조선으로부터 세차 운동의 절반 주기
이전인 1만 8천 년 이전의 마고의 시대입니다. '부도지' 에서는 허달성과 실달성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28수 중의 허수와
실수가 될 수 있을 듯 합니다.
이번 페이지는 꽤 길어졌습니다.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이상 많은 자료가 필요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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