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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주

사신도 /곰

by 자연처럼 2009. 2. 25.

무덤 벽화에 관속의 주인을 지키는 사신을 4벽에 그려 넣었는데
그럼 가운데 누워 있는 것은 동물로 치면 무엇이어야 할까요.

곰!

곰의 자손이 누워 있는 것이지요.
단군의 역사가 신화가 아니니까 웅녀를 인정 한다면 당연히 곰이겠지요.
글과 문자가 덜 발달하였고 더욱 전달한 수단이 없던 시기에
전달하는 방법이 이야기로 만들어서 구술하여 전달하는 수 밖에 없겠지요.
그것이 단군설화....우리의 역사인거지요.

곰이라 해서 곰을 토템으로 하는 부족이라 할 수 있겠지만
곰이 신의 지칭일 수 있다는 거지요.
곰이 신의 의미가 있다는 것은 증거한 글이 있지만 생략하더라도

"고맙습니다"
'곰 같습니다'가 변하여 '고맙습니다'라 한다면
신과 같습니다 그런 얘기니 얼마나 좋은 소리인가요.

곰이 꼭 동물 곰이었을까요?

북두칠성을 큰곰자리라 하지 않나요.
그리고 동양의 별자리 사방28수, 칠요정사가 북두칠성을 중심으로 이루어 졌는데
곰과 무관하다 할수 있을까요?

북두칠성(큰곰)을 중심으로 하는 천문지리를 중시한 민족을
곰 민족이라 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그러니 무덤 가운데 있는 것은 곰이지요.



강서대묘
(江西大墓)

평안남도 강서군 강서면 삼묘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벽화 고분으로
강서삼묘 중 가장 큰 변화 고분이다. 고분의 분구는 원형이며, 기저부의
지름은 약 51.6m, 높이는 8.86m이다.
무덤의 구조는 널방 남벽의 중앙에 달린 널길과 평면이 방형인 널방으로 된 외방 무덤이다. 널방 네 벽과 천장은 질이 좋고 잘 다듬어진 큰 화강암 판석 각각 한 장으로 축조하였고 천장은 2단의 삼각굄돌을 얹고서 덮개돌을 덮은 모줄임천장[抹角藻井式天障]이다.

벽화의 내용은 사신도(四神圖) 및 장식 무늬이며, 회칠을 하지 않은 잘 다듬어진 널방 돌벽 면에 직접 그렸다. 널방 남벽의 입구 주변에는 인동. 당초무늬를 그려 장식하고, 좌우의 좁은 벽에는 주작을 한 마리씩 그렸으며, 동벽에는 청룡, 서벽에는 백호, 북벽에는 현무, 천장 중앙의 덮개돌에는 황룡을 각각 그렸는데, 천장의 황룡은 침수에 의하여 박락(剝落)되어 분명하지 않다. 천장벽화는 천장부를 구성하고 있는 제1단 굄돌 옆면에 인동무늬를 감싸안은 초롱무늬가 S자형으로 이어져 나간 무늬띠를 돌렸으며, 제2단 굄돌 옆면에는 비천(飛天). 비운(飛雲). 신선. 선악 등이 그려져 있다. 이 굄돌의 아랫면에는 인동초롱무늬의 중앙에 연꽃무늬가 가미되어 있고 좌우에 연꽃잎을 그린 특이한 무늬가 그려져 있다.

 

 

 

 

 


 (시계 방향으로 종단면도.현실횡단면도.천장평면도.평면도)
아래 단위는 10尺이다.
 제2단 굄돌에는 비천을, 제3단인 삼각굄돌 옆면에는 연꽃을 그렸으며 그 아랫면에는 구석에 연꽃과 인동이 혼합된 무늬를 배치하고 그 좌우에 마주 대한 봉황을 그렸다. 제4단 굄돌 옆면에는 봉황이, 그 아랫면 구석에는 연꽃과 인동이 혼합된 무늬가 그려져 있다. 고분 축조 및 벽화의 연대에 관하여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지만 대체로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로 추정되며, 벽화는 대체로 철선묘법(鐵線描法)으로 그려졌는데, 사신도는 구상이 세련되어 우리나라 고분벽화 중에서 극치를 이루는 걸작으로 평가된다.


*** 강서대묘 (江西大墓) 사신도 (四神圖) ***
석벽에 채색
평남 남포시 강서구역 삼묘리
7세기

동서남북의 방위를 나타내고 우주의 질서를 진호(鎭護)하는 상징적인 동물을 그린 그림이다.
사신은 동쪽의 청룡(靑龍), 서쪽의 백호(白虎), 남쪽의 주작(朱雀), 북쪽의 현무(玄武)를 말한다.
사신에 대한 사상이나 도상(圖像)이 언제부터 유래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에서 진한시대(秦漢時代)에 걸쳐 정착된 것으로 보이며, 오행설(五行說)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나라에서는 삼국시대 고분 벽화에서 최초로 나타나며, 이러한 사상이 계속해서 전해 내려와 조선시대의 민화(民畵)에서까지도 보인다.

사신도의 형상은 시대에 따라 양식상의 차이는 보이지만, 청룡은 본래가 상상의 동물로서 몸에는 뱀의 비늘로 문양을 넣고 머리에 뿔이 한두 개 돋아 있고 불을 내뿜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백호는 호랑이 얼굴에 몸에는 호피문(虎皮文)이 표현되며 날개가 달려 있고, 혀를 내밀어 위용을 나타내었다. 주작은 봉황의 모습과 유사하다. 현무는 거북과 뱀으로 표현되는데, 뱀이 거북을 휘어 감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청룡도>靑龍圖

 


세련된 구도에 화려한 색채, 보는 이를 압도하는 속도감. 이 청룡은 뿔이 두 개 달렸다. 두눈은 튕겨나갈 듯 하고 길게 내뿜은 혀는 지금이라도 하늘로 솟아오를 듯하다. 몸통 부분에서 절정을 이룬 S자 곡선은 꼬리 부분에 이르러 부드럽고 긴 여운을 남긴다. 현란하게 채색된 비늘은 섬세함의 극치라 하기에 충분하다. 청룡 벽화 중 최고의 걸작이다.

청룡(靑龍)은 푸른용으로 상징되는 사신으로 하늘의 다섯 개 구문인 오관(五官)중 동관(東方)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태세신(太歲神:목성)으로도 통한다. 예로부터 무덤의 현실(玄室) 동쪽 벽이나 관(棺)의 왼쪽에 그렸다.

 


 <백호도> 白虎圖

 


 강서대묘의 백호도는 박락(剝落)이 심해 그 섬세하고 화려한 부분을 알아 보기가 어려우나 길게 뻗은 목과 크게 벌린 입은 백호의 용맹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주황색의 날개는 아주 선명하게 남아 있다.
강서중묘의 백호도와 비슷하다.

 백호(白虎)는 하늘의 다섯 개 구문인 오관(五官)중 서관(西方)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태백신(太白神:금성)으로도 통한다. 예로부터 무덤의 현실(玄室) 서쪽 벽이나 관(棺)의 오른쪽에 그렸다.

 


<현무도>玄武圖

 


고구려인의 기상과 예술혼에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거북을 휘감고 있는 뱀. 그 부드러운 곡선이 시원함을 넘어 현란함과 함께 힘찬 기상을 뿜어낸다. 서로 맞대고 있는 머리 사이로 긴장감이 몰려와 화면을 가득 채우는, 뛰어난 공간감각을 보여준다. 뱀의 비늘이나 거북무늬의 선명함에서 드러나듯 기법 또한 정교하고 능란하다.
세련미와 원숙미를 잘 보여주는 이 현무도는 고구려 화화의 최고 대표작이다.

 현무(玄武)란 하늘의 다섯 개 구문인 오관(五官)중 북관(北方)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현무의 정체는 <예기>에서 "현무는 거북이다"라 하였고, 또 거북과 뱀의 형상으로 그린 학자도 있는데 대체로 현무를 영구(靈龜)로 보는 것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강서대묘의 현무는 거북이 아닌 거북과 뱀의 형상을 그리고 있다. 예로부터 무덤과 관(棺)의 뒤쪽(북쪽)에 그렸다.

 


<주작도> 朱雀圖

 


힘차게 퍼덕이는 날개, 곧추세운 머리, 회오리 치는 듯한 꼬리, 비상을 준비하는 한 마리 주작. 그 생동감이 가득하다. 불길처럼 타오르는 깃털도 저 고구려인의 예술감각이 보통이 아님을 잘 보여 준다. 아랫 부분 불그스레한 갈색의 산맥이 화면을 부드럽고 그윽하게 해줌으로써 동(動)과 정(靜)의 조화까지 이루고 있다.

 주작(朱雀)이란 남방을 지키는 수호신인 남방성수(南方星宿)의 이름으로 주조(朱鳥)라고도 한다. 붉은 봉황을 형상화하여 예로부터 무덤과 관(棺)의 앞쪽(남쪽)에 그렸다.

<천정화>

 

맨 아랫단에 인동(忍冬)무늬가 초롱무늬에 감싸여 무늬띠를 돌렸으며그 위는 중앙에 산악이 있고 비천. 비운과 옆으로 새를 탄 선녀가 그려져 있다. 3단에는 연꽃을, 4단에는 봉황이 그려져 있다.전체적으로 화려하고 곡선이 아름답다.

천장은 하늘의 다섯 개 구문인 오관(五官)중 중심을 지키는 수호신인 황룡(黃龍)을 중심으로 다양한 그림을 그렸는데 황룡은 박락이 심해 알아보기가 어렵다.

 

 

칠성각/ 산신각

 

부처님을 모신 법당 뒤 쪽 한켠에는 우리 민족 고유의 토속신들을 불교적으로 수용
하여 모셔 놓은 조그마한 전각이 있습니다.

재물을 주는 산신(지신: 단군)을 모시는 산신각, 자식과 수명을 관장하는 칠성(천
신: 환인)님을 모시는 칠성각이 있어 사람들은 이 곳에서 복을 구하는 기도를 올립니
다.

그러면 인신인 환웅을 모시던 곳은 어디일까요? 우리민족의 사상은 천지인 사상으
로 천신과 지신이 있으면 인신도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인신을 모신 곳은 '대웅전'입니다. 대웅전은 옛날에는 환웅을 모신 '한웅전'이라고
했습니다. 환웅의 '환'의 뜻이 '크다, 밝다'라는 뜻의 순 우리말입니다. 그러나 불교
가 들어와서 우리의 정신이 쇠퇴함에 따라 불교가 이 자리를 차지하면서 환을 한자
인 큰 대(大)로 바꿔서 대웅전이라고 한 것입니다.

절은 저의 얼, 제얼, 즉 나의 얼을 닦는 수도의 장소로 고대부터 있어왔던 것이 불교
가 들어오면서 그 장소를 대신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삼신사상이 지금의
절에 이름이 바뀐 채 남아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옛부터 백두산, 태백산, 구월산, 마니산, 우수산 등에서 산신제를 지
내왔습니다. 그 기원은 건국사화에서 알 수 있듯이 한웅이 처음 지상에 내릴 때, 선
택한 태백산 정상 삼위태백에서 비롯됩니다.

산에서의 제사는 단순히 산신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드리는 천제였으며, 이런
천제가 세월이 흐르면서 산신과 산신제, 산신각의 형태로 남아 있게 된 것입니다.

산신각에 가면 산신과 호랑이, 나무, 선녀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는 단군과 수호신,
신단수, 웅녀의 의미로 해석되어도 될 듯 싶습니다. 그러므로 산신각은 지신을 의미
하는 단군을 모신 곳이 됩니다.

이런 고대 제천의식의 자리는 산 정상에 있었으며 점차 산중턱, 마을로 내려옴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산이 당산(당산), 진산(진산), 단산(단산), 신산(신산)등으로 불리
워 졌는데 살펴보면 산정상의 제단에는 어디에도 당집이 없고 적석단이나 마당, 또
는 바위가 대부분인 것으로 보아, 당산은 후대에 바뀐 말이고, 단산(檀山) 즉 성스러
운 산이 옳을 것입니다. 대마도에서도 제사를 지내는 곳은 '단산'이라고 합니다.

칠성각은 북두칠성을 의미하고 북두칠성은 우리의 환국시대의 7분의 환인을 의미합
니다. 그래서 칠성각은 천신인 환인을 모시는 장소였습니다.

이렇듯 우리나라 절에는 다른 나라에 없는 산신각과 칠성각 대웅전이 있습니다. 이
칠성각, 대웅전, 산신각은 한인, 한웅, 단군인 삼신을 말하는 것으로 원래부터 있어
온 우리 민족 고유의 사유체계이며 믿음인 것입니다.

처음 불교가 들어와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자 기존의 삼신사상을 받아들여 대웅전,
산신각, 칠성각이 만들어져 지금까지 우리의 민간신앙 형태로 남아있게 된 것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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