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애들은 동북공정이라해서
남의 역사를 자기네 변방의 역사로 만들려 혈안인데
우리는 일제가 왜곡한 역사가 점차 밝혀 지는데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고
위서니 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하여 학자적 양심을 저 버리는 것은 아닌지....
(본 것이 그거 뿐이라고 눈을 닫으면 별 수 없지만)
역사서라는게 정복자에 의해서 쓰여진 것이라
史實과 다르게 써질 수 있으니
史書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역사를 증명 할 수 있겠지요.
천문학자가 천문현상을 통해서
혹은 천년의 금서에서 처럼 시경 이나 잠부론을 인용하거나 그럴수 있겟지요..
또한 황제내경을 통해 뭔가추측할 수 있으리라 보는데요.
황제내경 上古天眞論에 보면 상고시대 중고시대, 근세 이런 말이 나오는데
황제 시대에서 황제가 얘기하는
상고, 중고는 언제 일까요?
그런 역사가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연구해 볼만 하지 않을까요?
黃帝曰:余聞上古有眞人者,提?天地,把握陰陽,呼吸精氣,獨立守神,肌肉若一,故能壽?天地,無有終時,此其道生。
상고시대에는 진인이란 선인이 있었다.진인은 천지의 대도를 파악하여 음양의 법칙에 따라서 우주의 정기를 호흡하고,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구속을 받지 않고, 생명력을 유지하여 심신이 함께 천지의 운행에 융합된 상태가 되었으므로 그 수명은 천지와 같이 무궁하였다.그야말로 천지의 대도와 함께 생존하고 있었다
中古之時,有至人者,淳德全道,和于陰陽,調于四時,去世離俗,積精全神,游行天地之間,視聽八遠之外,此蓋益其壽命而强者也。亦歸于眞人。
중고시대에는 지인이라는 선인이 있었다.지인은 후덕하고, 천지의 대도와 음양의 법칙에 따라 춘하추동의 천의 운행과 조화하였다. 그리하여 세속을 떠나서 심산(깊은 산속)에 들어가 우주의 정기를 흡수 저장하여 생명력을 완전히 보유하여 우주 사이를 마음대로 유행하면서 이 세상의 구석구석까지 견문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생각컨대 그들은 수양에 의해 천부의 수명을 연장하여 생명력을 더한 것일 것이다.이 사람들도 역시 진인의 부류에 속한다
其次有聖人者,處天地之和,從八風之理,適嗜欲于世俗之間,無?嗔之心,行不欲離于世,被服章,擧不欲觀于俗,外不勞形於事,內無思想之患,以恬愉爲務,以自得爲功,形體不?,精神不散,亦可以百數。
근세에는 성인이라는 사람들이 있었다.성인은 춘하추동 주야의 천지의 운행과 조화하여 각 계절에 불어오는 바람의 이치를 알아서 사풍을 쐬는 일이 없었다.욕망은 평범하게 가지고, 마음을 조용히 하여 성내지 않고, 그 행동도 속세를 떠난 것이 아니라, 범인들과도 어울리며, 평범한 의복이나, 관을 쓰고도 그 행동은 속되지 않았다.육체적으로는 과로를 삼가하였고, 정신적으로는 희로애락에 마음이 흔들리거나 유혹에 빠지는 일이 없었으며, 담백한 즐거움에 만족하였으며, 무슨 일에도 결코 무리를 하지 않았다.
이러한 생활 태도였으므로 육체도 정신도 온존되어 100세 이상의 수명을 누릴 수 있었다.
其次有賢人者,法則天地,象似日月,辨列星辰,逆從陰陽,分別四時,將從上古合同于道,亦可使益壽而有極時。
금세에는 현인이라는 사람이 있어서 춘하추동의 천지의 운행에 따라서 천문력수를 체득하여 그 음양의 변화에 생활 태도를 조화시켜서 4시의 정사의 바람을 구별하여 사기에 손상되지 않도록 주의하여 상고의 진인과 흡사한 양생의 도를 수득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의 국호인 한(韓)이 어디서 왔을까 궁금했어요. 어떤 자료를 찾아봐도 그와 관련된 내용이 없었죠. 그러던 어느 날, 기원전 9세기 경에 쓰여진 시경(詩經)에서 흥미로운 자료를 발견했어요. 한후(韓侯)라는 왕이 중국 주나라를 방문했다는 기록이었습니다. 또 중국 후한의 대학자 왕부가 이 '한후'를 동쪽나라의 왕, 즉 우리 조상이라고 쓴 저작도 확인할 수 있었어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한반도' 등의 작가 김진명 씨(51)가 이번에는 한국 고대사에 도전했다. 우리나라 국호의 연원을 파헤치는 소설 '천년의 금서'(새움 펴냄)를 펴낸 것.
한 물리학자가 친구의 사망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우리 고대사의 비밀과 대한민국 국호의 연원을 밝혀낸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김씨의 소설은 나올 때마다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음모론, 알려지지 않은 진실 등 꼭 우리 역사를 뒤흔들 수 있는 소재만 건드렸기 때문. 그런데 이번 작품도 심상치 않다. 한반도에 세워진 최초의 국가가 고조선이 아니라 기원전 9세기 무렵에 존재했던 '한(韓)'이라는 나라라고 주장한다. 역사학자들에게서 진위 여부를 놓고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지난 16일 만난 김씨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전혀 두렵지 않고, 오히려 논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후'가 우리의 조상일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역사학계에서는 일부러 그랬는지 몰라도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죠. 어쩌면 뻥 뚫린 상태로 있던 우리 고대사의 비밀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인데도 말이에요. 이제 역사학자들이 이에 대해 거짓말이라고 비판하든, 진짜라고 인정하든 언급할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제 소설이 그 논란에 불을 댕기는 데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소설을 쓰는 작가이긴 하지만 김씨의 역사에 대한 관심은 주변에서도 알아줄 정도다. 우리나라의 고전 역사책은 물론 '사기' 등 중국 역사책까지, 그의 손을 거쳐가지 않은 책이 없다. 고대사를 다룬 '천년의 금서'부터 현대의 이야기를 다룬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까지 작품도 대부분 역사를 테마로 한 것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인간과 사회를 다룬 책에 관심이 많았어요. 관련 책을 거의 끼고 살다시피 했죠. 그런데 그 관심을 더 깊게 파고들어가 보니까 역사, 그것도 우리 역사가 나오더라고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체성'이잖아요."
김씨는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작가 중 한 명이다. 데뷔작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나올 때부터 밀리언셀러가 되더니 지금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모든 작품의 판매량을 합치면 1000만부가 족히 넘는다.
하지만 평단의 비난도 한 몸에 받는다. '대중에 영합하는 작가'라는 얘기도 있고 '극단적 민족주의자', 또 '과도하고 거친 상상력의 작가'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주변의 평가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평판에 신경 썼다면 아마 작품활동을 계속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저는 그냥 제가 쓰고 싶은 것을 씁니다. 그에 대한 평가는 독자들이 직접 내리는 것이라고 보고요."
[손동우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단군세기’에 등장하는 ‘오성취루(五星聚婁)’가 BC 1734년 실제 있었던 천문현상
[서울신문]2005-01-27 20판 31면 1095자 컬럼,논단 |
1990년대 초 한국 고대사 체계를 뿌리부터 흔들 만한 논문이 한 학자에게서 잇따라 나왔다.“고구려·백제·신라 3국의 중심지는 중국 대륙이다.”“고조선을 기록한 ‘단기고사’‘단군세기’의 내용은 정확하다.”는 주장이었다. 발표한 이는 역사학자가 아닌 서울대 천문학과의 박창범 교수(현 고등과학원 교수).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우주론 연구로 박사 학위를 딴 그는 역사서에 등장하는 천문 현상을 첨단기법으로 시뮬레이션해 이같은 결론을 이끌어냈다. 박 교수는 삼국사기의 천문 기록이 중국·일본 사서보다 정확하다는 사실을 밝혀낸 뒤 이를 토대로 고구려·백제·신라의 일식 기록을 분석해 천문 관측처(수도)가 중국 대륙에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또 고조선 역대 단군(임금)의 행적을 기록한 ‘단기고사’‘단군세기’에 등장하는 ‘오성취루(五星聚婁)’가 BC 1734년 실제 있었던 천문현상이며, 그 발생과 사서의 기록에는 1년의 오차가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오성취루’는 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의 다섯 행성이 한 별자리 부근에 모이는 현상이다. 박 교수의 연구방법이 전문적인 데다 내용이 갖는 폭발성이 워낙 크기 때문인지 아직은 이를 비판하거나 뒷받침하는 후속 연구성과는 나오지 않은 듯하다. 다만 이를 계기로 ‘고천문학(古天文學)’이 별도의 학문 분야로 인정받았고 연구자가 늘고 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천문 현상을 ‘하늘의 뜻’으로 여겨 세밀하게 관찰했으며 일일이 기록했다. 따라서 멀리는 고조선, 가깝게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에 이르는 수천년의 천문 기록을 가진 우리 문화는 고천문학의 보고이다. 그뿐이 아니다. 세계에서 고인돌을 가장 많이 보유한 우리 땅에서 고인돌에 새긴 별자리가 속속 발견되고 있다. 관련 연구가 진행되면 별자리 기록의 역사는 몇천년을 더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현대 천문학으로도 풀지 못한 ‘물병자리’ 변광성(變光星)의 비밀을 ‘고려사’와 ‘증보문헌비고’의 기록을 분석해 밝혀냈다는 보도가 어제 있었다. 고천문학이 올린 또 하나의 개가이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고천문학의 발달과 함께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성, 높은 과학 수준은 계속 입증되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 오성취루(五星聚婁) 현상
<단기고사>나 <단군세기> 기록에 따르면, 제13대 단군인 홀달단제 50년, 즉 BC 1733 년에 다섯 개의 별이 서로 한군데에 모인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돼 있다. 즉 '무진 오십년 오성취루(戊辰 五十年 五星聚婁)' 라는 한 줄의 글귀로, 무진 50년에 다섯개 별이 루성(婁星) 근처에 모였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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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교수팀은 기록에 나타난 BC 1733년을 기점으로 전후 약 5백50년 사이에 오행성의 결집이 일어난 시점을 샅샅이 조사했다. 조사 결과는 처음에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기록에 나타난 BC 1733 년으로부터 바로 1년 전인 BC 1734 년에 매우 뚜렷한 형태로 오행성이 서로 아주 가까워져 있는 현상이 발견된 것이다. 이 해 7월 13일 초저녁 다섯개의 별은 지상에서 보아 약 10도 이내의 거리에 모여 있었다.
이 날은 왼쪽 하늘에 초승달이 비스듬하게 떠 있어, 별빛이 한층 더 찬란하게 빛났었다. BC 1733 년을 기점으로 하여 5백50년을 전후한 시기에 오행성이 이보다 가깝게 모인 시기는 그보다 약 1백80년 전인 BC 1953년 2월 25일 새벽 단 한번밖에 없었다.
▲ BC 1733년 홀달 단제 시대 단군 조선인들이 보았을 오행성의 결집 현상을 서울대 박창범 교수가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역으로 추적하여 컴퓨터 합성기법으로 시각화했다.
박교수는 "기록 연수보다 1년 정도 차이가 나는 것은 당시의 시간 계산법과 약 3천여 년이 지난 지금의 시간 계산법 차이를 고려하면 무시해도 좋은 수치이다." 라고 말했다. 만약 후대의 누군가가 이 현상을 작위적으로 기술해 넣었을 경우, 이것이 서로 맞아떨어질 확률은 박교수의 계산 결과 0.007%, 즉 "세계 지도에서 임의의 한 장소를 지목했을 때 그것이 대한민국일 가능성" 에 비유될 정도로 매우 희박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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