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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자

by 자연처럼 2010. 9. 9.

탱자나무는 꽃도 열매도 향기롭다.

같은 운향과인 귤은 껍질을 벗기거나 으깨야 향기가 나지만, 탱자는 가만히 두어도 향기가 난다.

탱자는 남쪽지방에 흔한 나무라, 가을이면 자동차 안에 방향제 대신 탱자를 몇 개씩 넣어 두는 이들이 많다. 탱자를 쓰고 시어서 먹을 수 없는 열매로 치부하는 이들이 있다.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면서 소일하는 것을 탱자탱자 놀고 있다고 한다.

그걸 왜 '탱자탱자'라고 할까.
 
대개의 사람들이 추측하길
공자왈 맹자왈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니
공자 맹자의 자자를 사용하면서
형편없음을 빗대기 위해 귤 같으면서도
맛 없고 볼품없는 탱자를 떠올린 거라고 본다.
하지만 아무리 수긍하려고 해도 영 수긍이 안된다.
볼품없고 하찮은 것이 어디 탱자 뿐이랴.
 
그래서 생각해 본 것이 한자 '탱'이다.
우리가 흔히 '분기탱천'이라고 할 때 이 탱(撑) 자를 쓴다.
이 撑 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그 가운데는

"버티다 / (배를)저어 나가다  / 배부르다" 의 뜻도 담고 있다.

실제로 느긋하고 한가하게 배를 젓는 모양을 탱탱(撑撑)이라고도 한다.
배부르고 등 따시겠다 공부고 일이고 다 때려지고
한가하게 배타고 노나 저으면서 게으르게 살아가는 모습을 표현하기에
더할나위 없이 적합하지 않을까?
 
이런 대화를 떠올려보자.
 
"완전히 대 자로 뻗었구만"
"그러게. 길목에 큰대 자로 누워 있으니 어떻게 지나가란 거냐."
 
"쟤는 완전히 탱 자로 놀아. 배 타고 신선놀음이라니까."
"완전 탱 자~ 탱 자~ 그 자체구만."

 

 

남귤북지(南橘北枳) 혹은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말이 있다.
아시다시피 강남의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로 변한다는 뜻이다.

같은 나무라도 환경에 따라 귤이 되거나 탱자가 되듯이 사람도 환경이나 조건에 따라 품행이 방정하거나 성질이 악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또 외래 문물을 올바르게 받아 정착하지 못하면 오히려 안 받아들인 만 못하다는 뜻으로 쓰기도 한다.

안자춘추(晏子春秋)라는 고전에 이에 대한 일화가 나온다.

춘추시대 말기에 제(齊)나라에 안영(晏孀)이란 재상이 있었다.
어느 해, 초(楚)나라 영왕(靈王)이 그를 초청했다.

안영이 너무 유명하다니까 만나서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싶은 심술이 작용한 것이다.
수인사가 끝난 후 영왕이 입을 열었다.

“제(齊)나라에는 그렇게도 사람이 없소?”

“사람이야 많이 있지요.”

“그렇다면 경과 같은 사람 밖에 사신으로 보낼 수 없소?”

안영의 키가 너무 작은 것을 비웃는 영왕의 말이었다.
그러나 안영은 태연하게 대꾸하였다.

“예, 저의 나라에선 사신을 보낼 때 상대방 나라에 맞게 사람을 골라 보내는 관례가 있습니다.

작은 나라에는 작은 사람을, 큰 나라에는 큰 사람을 보내는데 신(臣)은 그 중에서도 가장 작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뽑혀서 초나라로 왔습니다.”

가는 방망이에 오는 홍두깨 격의 대답에 영왕이 할 말을 잠시 잊었다.

그때 마침 포졸이 죄인을 끌고 지나갔다.

“여봐라! 그 죄인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

“예, 제(齊)나라 사람이온 데, 절도 죄인입니다.”

영왕이 안영에게 다시 물었다.

“제나라 사람은 원래 도둑질을 잘 하오?”

안영에게 모욕을 준 것이나 안영은 초연한 태도로 말했다.

“강남에 귤(橘)이 있는데 그것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枳]가 되는 것은 토질 때문입니다.

제(齊)나라 사람이 제(齊)나라에 있을 때는 원래 도둑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랐는데 그가 초(楚)나라에 와서 도둑질한 것을 보면, 이 역시 초나라의 풍토 때문인 줄 압니다.”

안영의 기지와 태연함에 영왕은 사과를 했다.

“애당초 선생을 욕보일 생각이었는데 결과는 과인이 욕을 당하게 되었구려.”

영왕은 크게 잔치를 벌여 환대하는 한편 다시는 제 나라를 넘볼 생각을 못했다.


3.
우리가 흔히 할 일없이 빈둥거리는 것을 두고 "탱자탱자" 한다고 말한다.
일을 두고도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면서 세월만 보내는 것도 그렇게 표현한다.

어디서 이런 말이 유래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데 억지로 추측하자면, 앞서 말한 코미디 프로그램처럼 공자와 맹자에서 따온 말로, 거드름을 피우거나 조리에 맞지 않는 말을 지껄이며 본분에 충실하지 않는 것을 비꼰 것이 아닌가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익은 탱자를 말리느라고 펼쳐놓은 모양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한다.
햇볕 좋은 가을날 오후, 탱자들이 한가롭고 여유롭게 뒹구는 모습에서 게으르고 빈둥거리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변했다고 한다.

한편 국어사전에 없는 전라도 말에 "탱하다"가 있다고 하는데, 긴장이나 절제가 없이 방심하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다고 하니 여기서 탱자탱자 한다는 말이 나온 것이라고도 한다.

또 귤을 보고도 탱자라고 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탱자라고 동무를 놀린 적이 있었는데, 동글동글 살이 있으되 무르지 않고 야무진 아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여기서는 탱자처럼 게으르거나 굼뜬 속성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작지만 몸집이 탱탱하고 튼실한 아이를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고향의 시골마을에는 감나무 집, 탱자나무집이라고 부르는 집들이 있었다.

감나무 집은 커다란 감나무가 마당에 있는 집이었고, 탱자나무집은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삼은 집을 가리켰다.

아이들 키만하고 어른 가슴 높이의 탱자나무 울타리는 그 억센 가시와 빽빽한 가지로 도둑을 막기에 충분하고, 높기만 한 콘크리트 담보다 운치가 있다.

탱자가 익을 무렵이면 은은한 향기가 길에까지 깔렸다.
탱자나무는 원래 경기 이남 지방의 따뜻한 곳에서 자란다.

최근 일부 도시에서 담장 없애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보기에도 좋은 탱자나무를 심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단맛과 크기는 귤에 미치지 못하지만 시골 살림의 풍치를 더해주고 두루두루 쓸모가 많은 것이 탱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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