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만날까요?
궁금하여 여기 저기 찾았으나 별로 명확하지 않습니다.
나름대로의 전설을 가지고 있는 의미를 찾았으나
왜 7월7석이라하여 중요한 명절로 여기는 본래의 의미는 규명하지 못한 느낌입니다.
일년에 한번 그것도 음력 7월 7일에 만나는 것이 전설로만 여기기에는....
의미 있는 천문현상의 하나로 이때에 어떤 변화를 가져 오기 때문에 중요시 하는 것 아닐까요?
지구의 공전중 이때 쯤에 서로 떨어져 있는 견우성과 직녀성이 만나는 것 처럼 보이거나,
이때쯤 견우성의 독수리별자리와 직녀성의 거문고별자리가 1년마다 실제 가까워지든가(만나거나)...
(이것 보다는 위의 지구의 움직임에 따라 만나는 것 처럼 보이는 것이 더 타당 할 듯 )
그때는 비가 온다.... 이런 얘기가 되겠지요.
뭔가 의미 잇는 날이니까 잊지 말라고
기억하라고 전설과 같은 이야기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인거지요.
글을 보관하는 종이나 책이 부족한 시절부터......
뭔가 있는 거지요,
검색하여 나온 글에 견우직녀 얘기가 나왔군요.
북두칠성이 곰이라는 얘기도 있어 같이 퍼 왔습니다.
*** 견우직녀와 애동무당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서는 “부여의 습속에 천후가 불순하고 오곡의 생육이 순조롭지 않으면 그 책임을 국왕에게 물어 국왕을 쉽게 바꿀 수도 있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고구려왕은 영성靈星과 사직社稷에 제사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영성은 28수의 북방현무칠수北方玄武七宿에 속한 견우와 직녀이다. 견우는 나반이고 직녀는 아만이다. 이들은 인류의 조상이다.
견우의 측실인 수녀須女가 견우의 정실인 직녀에게 칠석제를 지냄으로써 은하수의 물길이 열리고 견우가 은하수를 건너 자미원으로 들어가 천제를 만난다. 때는 장마가 극에 달해 있을 때이다. 견우가 하는 일은 장마를 그치게 하도록 천제와 담판을 짓는 일이다.
천제는 견우에게 사해용왕을 지휘하여 장마를 그치게 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한다. 그 징표로 견우가 천제로부터 받아오는 것이 견우로 불리는 소 한 마리이다.
인류가 농경시대로 들어서면서 생겨난 신화로 볼 수 있다.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에서 이별하는 광경이 고구려고분에 벽화로 그려져 전해온다. 지금도 무당은 정월 보름과 칠월칠석을 우리 민족의 2대 명절로 친다.
** 산신 한웅과 여신 곰
한국 선사시대에 지모신의 일반적인 형태는 산신이면서 여신이다. 천신인 한웅과 지신인 곰이 결혼함으로써 지신이 천신의 배우자가 된다. 여신이 천신과 결혼하는 이유는 농경의 수호신으로서 풍요와 다산을 보장해 주기 위해서이다, ‘ 천신의 배우자로서의 지신신앙의 구조’의 맥락은 이러하다.
곰은 고마이고 고마는 마고이다. 마고는 지신이 아니라 인신이기도 하고 천신이기도 하다. 아직 지신에 대한 관념이 생겨나지 않았던 때라 곰은 천신이다.
곰은 호랑이와 함께 동굴에 들어가서 지신이 되기 위하여 금기하지 않고 인신이 되기 위하여 금기한다. 한웅 또한 인신이 되어 대인으로 불리는 대인국인(大人國人)의 조상이 된다. 곰이 지신이라는 증거는 아무데도 없다. 다만 학자들이 지신으로 해석을 했을 따름이다.
하늘에서는 곰은 북두칠성이다. 북두칠성은 남신이고 북두칠성에 대응하는 여신은 직녀성이다.
마고와 직녀성은 같은 신이다. 마고가 오른다리 오름을 하여 직녀성이 된다.
직녀성은 낳는 별이고 옷감을 짜는 별이다. 삼라만상을 창조하는 일이 마고가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에게서 곰삭아야 한다는 말이 생겨난다. 숙성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곰은 마고이기 때문에 만물의 어머니로 대접을 받는다. 그에게 창조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를 마마 엄마라고 한다. 무교에서 곰은 공으로 음차 된다. 그래서 곰이 공주로 불리게 된다. 공주는 궁중에서 아기씨로 호칭한다.
아기씨를 모신 당을 아기씨당이라고 한다. 아기씨당은 마고를 모신 마고할미당이다. 마고당을 도성에 만들고 이를 도당이라고 한다. 이 도당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간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할미당이라는 의미에 하백녀를 모신 당이 포함된다
펌 노중평의 마고지나이야기에서 http://kr.blog.yahoo.com/godam7777/133.html
위의 퍼온 글을 보면
1. 결국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칠석에는
견우가 은하수를 건너 천제를 만나 비를 멈추게 한다는 얘기가 되는 것인가요?
하늘을 바라보고 농사를 짓던 시절에는
천문(하늘의 별자리)을 보고 기후변화를 예측할 수 밖에 없었겠지요.
임금은 천문과 지리를 능통한 신하를 거느리고
천문을 관측하게 하여 농사 일에 지침이 되는 지시를 내리도록 하지 않았을까요?
그중 하나로 견우성과 직녀성이 만나는 칠석에 장마가 끝나는 즈음
비 피해를 벗어 날수 있으니 명절로 정해 하늘에 감사를 올릴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2. 북두칠성이 '큰곰자리'고 단군역사에서 나오는 곰에 해당한다면,
곰을 토템으로 여기는 부족이 아니라 북두칠성을 모시는 부족이 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삼신사상이니, 칠성사상이 나온 것이겠지요.
만족할 만한 답은 아니라 보지만 이 정도로 머릴 굴려 봅니다.
(참고로 퍼온글)
칠석의 유래
음력 7월 7일을 칠석(七夕)이라 한다. 이 날은 1년 동안 서로 떨어져 있던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 이라고 하는데, 그들의 애틋한 사랑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여 내려온다.
하늘나라 목동인 견우와 옥황상제의 손녀인 직녀가 결혼하였다. 그들은 결혼하고도 놀고 먹으며 게으름을 피우자 옥황상제는 크게 노하여 견우는 은하수 동쪽에, 직녀는 은하수 서쪽에 떨어져 살게 하였다. 그래서 이 두 부부는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건널 수 없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애태우면서 지내야 했다.
이러한 견우와 직녀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 들은 까마귀와 까치 들은 해마다 칠석날에 이들을 만나게 해주기 위하여 하늘로 올라가 다리를 놓아 주었으니 그것이 곧 오작교(烏鵲橋)이다.
그래서 견우와 직녀는 칠석날이 되면 이 오작교를 건너 서로 그리던 임을 만나 1년 동안 쌓였던 회포를 풀고 다시 헤어진다. 그래서 칠석날 세상에는 까치와 까마귀는 한 마리도 없으며, 어쩌다 있는 것은 병이 들어 하늘로 올라갈 수 없는 것들이라고 한다. 또 까마귀와 까치는 이날 다리를 놓느라고 머리가 모두 벗겨지게 된다고 한다. 칠석날 전후에는 부슬비가 내리는 일도 많은데, 이는 견우와 직녀가 서로 타 고 갈 수레 준비를 하느라고 먼지 앉은 수레를 씻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물이 인간 세상 에서는 비가 되어 내리므로, 이 비를 '수레 씻는 비' 즉 '세차우(洗車雨)'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칠석날 저녁에 비가 내리면 견우와 직녀가 상봉하여 흘리는 기쁨의 눈물이라고 하며, 이튿날 새벽에 비가 내리면 이별의 슬픈 눈물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때의 비를 '눈물 흘리는 비', 곧 '쇄루우(灑淚雨)'라고도 한다.
이 이야기는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에 들어 온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 한대(漢代)의 괴담(怪談)을 기록한 책인 《재해기(齋諧記)》에 이러한 이야기가 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7월 7일 저녁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갈라졌던 견우성과 직녀성이 만나는 자연적인 현상에서 성립되었다.
즉 천문학상의 명칭으로 견우성(牽牛星)은 독수리별자리[鷲星座]의 알타이어(Altair)별이고, 직녀성(織女星)은 거문고별자리[琴星座]의 베가(Wega)별을 가리키는 것으로 원래 은하수의 동쪽과 서쪽의 둑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별은 태양 황도상(黃道上)의 운행 때문에 가을 초저녁에는 서쪽 하늘에 보이고, 겨울에는 태양과 함께 낮에 떠 있고, 봄 초저녁에는 동쪽 하늘에 나타나며 칠석 때면 천장 부근에서 보게 되므로 마치 1년에 한 번씩 만나는 것처럼 보인다. 최남선은《조선상식(朝鮮常識)》에서, 견우성과 직녀성이 1년에 한 번씩 마주치게 보이는 것은 일찍이 중국 주대(周代) 사람들이 해마다 경험하는 천상(天象)의 사실이었는데, 여기에 차츰 탐기적(耽奇的)인 요소가 붙어 한대(漢代)에 와서 칠석의 전설이 성립된 것이라고 하였다.
칠석의 풍속
칠석날의 가장 대표적인 풍속으로는 여자들이 길쌈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직녀성에게 비는 것이다. 이 날 새벽에 부녀자들은 참외, 오이 등의 초과류(草菓類)를 상위에 놓고 절을 하며 여공(女 功:길쌈질)이 늘기를 빈다.
잠시 후에 상을 보아 음식상 위에 거미줄이 쳐져 있으면 하늘에 있는 선녀가 소원을 들어주었으므로 여공(女功)이 늘 것이라고 기뻐한다.
혹은 처녀들은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놓은 다음, 그 위에 고운 재를 평평하게 담은 쟁반을 올려놓고 바느질 재주가 있게 해 달라고 비는데, 다음날 재 위에 무엇이 지나간 흔적이 있으면 영험이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풍속은 직녀를 하늘에서 바느질을 관장하는 신격으로 여기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원래는 칠석날 밤에 궁중이나 민가의 부녀자들이 바느질감과 과일을 마당에 차려 놓고 바느질 솜씨가 있게 해 달라고 널리 행하던 중국 한대(漢代)의 걸교(乞巧)의 풍속을 따른 것이다.
이 풍속은 당대(唐代)에 와서 주변 민족들에 전파되었는데, 우리 나라의 칠석 풍속은 중국의 그것과 는 사뭇 다르다. 이 날 각 가정에서는 밀전병과 햇과일을 차려놓고, 부인들은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놓고 가 족의 수명장수와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기도 한다. 또 이북지방에서는 이 날 크게 고사를 지내거나 밭에 나가 풍작을 기원하는 밭제[田祭]를 지내기도 한다.
중부지방에서는 '칠석맞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단골무당에게 자녀의 무사 성장의 기원을 부탁하는 것이다. 무당은 물동이를 타고 기원의 상징인 명다리를 내어 바람에 불리고, 다시금 무사 성장의 기원을 한다.
한편 7월이면 무더위가 한풀 꺾이는 시기이다. 농가에서는 김매기를 다 매고 나면 추수때까지는 다소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래서 장마를 겪은 후이기도 한 이때, 농가에서는 여름 장 마철 동안 눅눅했던 옷과 책을 내어 말리는 풍습이 있다. 이를 쇄서폭의(?書曝衣)라 하는데, 이 날은 집집마다 내어 말리는 옷과 책으로 마당이 그득하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7월 7일조에도 인가에서는 옷을 햇볕에 말린다 하여 이는 옛날 풍속이라 하였는데, 이 날에 내어 말리는 옷과 책의 수량에 따라 잘살고 못사는 것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최남선의《조선상식(朝鮮常識)》에는 칠석은 원래 중국의 속절(俗節)로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공민왕(恭愍王)은 몽고 왕후와 더불어 내정에서 견우·직녀성에 제사하였고, 또 이날 백관들에게 녹을 주었으며, 조선조에 와서는 궁중에서 잔치를 베풀고 성균관 유생들에게 절일제(節日製)의 과거 를 실시하였다고 하였다. 다양한 생활주기와 가치관의 변화 속에서 오늘날 칠석의 풍속은 다만 견우와 직녀의 전설이 동 심의 세계에 꿈을 부풀리는 기능을 하고 있을 뿐이다.
칠석의 시절음식
칠석의 절식으로는 밀국수와 밀전병이 있다. 이 날이 지나고 찬바람이 일기 시작하면 밀가루 음식은 철 지난 것으로서 밀냄새가 난다고 하여 꺼린다.
그래서 밀국수와 밀전병은 반드시 상에 오르며, 마지막 밀음식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곧 칠석인 것이다.
견우와 직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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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弱水) : 옛날 중국에 신선이 살던 고장에 있었다는 물 이름. 길이가 삼천 리가 되며 浮力(부력)이 약해서 기러기 털도 가라앉는다 함. 더구나 사람은 건너지 못한다는 물. 이별하고 있는 두 사람 사이에 가로 막고 있는 장애물로 많이 등장
옥황상제의 미움을 산 두 남녀, 견우와 직녀. 옥황상제는 "이제부터 직녀는 은하수 서쪽에서 베를 짜고 견우는 은하수 동쪽에서 살도록해라!"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견우와 직녀는 용서를 빌었지만 옥황상제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대신 일년에 딱 한번 음력 칠월 칠일 한 번 만날수 있게 해주었는데 이것이 바로 칠석날입니다.
그러나 견우와 직녀가 일 년을 기다려 만나기 위해 나왔을 때에는 은하수가 두 사람사이를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슬프게 우는 모습을 본 까마귀와 까치들은 너무 불쌍해 곧 서로의 몸을 이어 다리를 만들어 두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었는데 이 다리가 바로 오작교입니다.
칠월 칠석날에는 주로 비가 오거나 흐린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견우와 직녀가 만나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 때문입니다. 칠월 칠석 무렵은 바쁜 농사 일이 어느 정도 끝나고 더위도 한풀 꺽이는 때라 여름 내내 입었던 옷을 빨아 햇볕에 말렸는데 칠석날 옷과 책을 말리면 일 년 내내 좀을 먹거나 상하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칠석날 부녀자들은 마당에 바느질 차비와 맛있는 음식을 차려 놓고, 문인들은 술잔을 교환하면서 두 별을 제목으로 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또, 집집마다 우물을 퍼내어 청결히 한 다음 시루떡을 해서 우물에 두고 칠성제를 지냈답니다. 음식으로는 밀국수, 밀전병을 해먹고 잉어를 재료로 음식, 증편을 만들거나 복숭아, 수박으로 과일 화채를 만들어 먹었다고 합니다.
견우직녀 신화를 다시 보자
북한에 있는 덕흥리 고분에는 귀중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견우와 직녀신화를 벽화로 그린 것이다.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견우는 염소 만한 크기의 소를 끌고 견우성을 향하여 떠나고, 직녀성이 자미원 밖에서 견우를 배웅하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고구려시대의 견우와 직녀 천문도를 의인화하여 그린 천문도이다. 우리는 이 천문도를 봄으로써 고구려시대에 칠석날 칠석제를 지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칠석날은 인류의 조상인 나반(那盤)이 천하(天河-은하수)를 건너서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날이다.(한단고기 太白逸史 三神五帝本紀) 그에게는 하나님을 만나서 단판을 지어야 할 일이 있다.
장마를 그치게 하는 일이 그가 하는 일 중에서 가장 큰 일이다. 그는 담판을 끝내고, 그 징표로 소 한 마리를 받아서 이끌고 은하수를 건넌다. 음력 칠월 초승에 장마가 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견우는 땅에서 인류의 조상이 된다. 그를 배웅하는 직녀는 땅에서 인류의 조상인 아만(阿曼)이다. 그는 후대에 와서 최초의 문명인인 마고(麻姑)로 다시 태어난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나반이 칠월칠석날 은하수를 건너서 하나님을 찾아가야 하는가?
옛날에는 천기의 순환주기를 1 월 ∼ 6 월, 7 월 ∼ 12 월 둘로 보았다.
첫 주기는 1 월에서 6 월까지인데, 이때 천기가 왕성하다.
이 기간이 시작되는 섣달 아침에 달이 뜨고, 정월 초하루에 음과 양이 만난다. 왕(旺)한 천기는 6 월에 가서 극(極)에 달한다.
이때 하늘의 수문(水門)이 열리고 거대한 빗줄기가 땅을 향하여 퍼붓는다. 이것이 6 월 장마이다.
두 번째 주기는 7 월 ∼ 12 월인데, 천기가 왕성하지 못하다고 보고 이를 폐(廢)하다고 하였다.
폐한 천기는 7 월에 시작하고, 해가 중천에 있을 때 달이 뜨므로, 이때를 시작의 시기로 보았다.
이 날 나만이 천하를 건너서 하나님을 만남으로써 지루한 6 월의 장마 기운이 사라진다.
칠월칠석은 이렇게 나만을 통하여 장마가 끝났음을 선언하는 날이다. (글) 古潭 노중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