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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조선왕조실록 단군

by 자연처럼 2010. 1. 12.

| ▣ 조선왕조실록의 고조선  

명나라에 자문을 구해 그 이름을 승락 받았다는 조선 ... (조선은 두 개의 이름을 명나라에 제시했으며, 아마도 명나라 황제는 그 중 사신이 추천하는 이름을 선택했을 듯 합니다. 이는, 양 쪽 모두 신흥국으로서 명과 조선간의 상호인정으로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어쨌든, 주 무왕 때의 조선왕 책봉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2천 년 만에 다시 살려낸 ‘조선’의 이름 뒤에는 어떤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요 ...
[ 조선왕조실록 ]
‘조선왕조실록’ 에는 황해도 구월산과 평양의 단군사당의 제례 의식과 관련하여 수십 차례 등장하고 있습니다. 단군은 동방에서 처음으로 천명을 받은 임금이며, 기자는 처음으로 교화를 일으킨 임금입니다. ...

태조, 예조판서 조박 
그때가 제요의 시절, 대를 전해온 것 몇인가, 역년은 거듭 천년을 지났네. ... 시고개벽동이주 우리 동방은 단군, 기자가 모두 그 역년이 1천 년이 됩니다. ...

태종 5년 의정부 상서  단군, 기자가 모두 1천 년이며, 한 사람이 아닌 왕조였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평양은 단군과 기자가 도읍을 세운 뒤로 서북지방의 본영이 되었습니다. ...

태종 7년 평양 부윤 윤목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의 도읍지는 같은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단군조선의 도읍은 평양, 백악, 아사달의 세 곳이 됩니다.기자가 도읍한 곳은 첫 도읍지인 평양이었을 것입니다. 백악은 아마도 요령성 근방, 아사달은 황해도 구월산일 것입니다.)  우리 동방은 단군이 시조이며, 대저 하늘에서 내려왔고 천자가 분봉한 나라가 아닙니다. 단군이 당요의 무진년에 내려와, 오늘날에 이르러 3천여 년이 됩니다. ...

태종 16년, 변계량 단군의 건국은 당요의 건국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단군은 당요와 같은 시대에 나라를 세워 스스로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고, 기자는 주나라 무왕의 명을 받아 조선에 봉하게 되었으니, 역년을 살펴보면 요임금에서 무왕까지 1천 2백 30여 년이 됩니다. ...

세종 7년 사서 주부 정척 단군의 치세기간이 중국 역사로부터 1천 2백 30여 년으로 추정됨을 알 수 있습니다. 단군이 삼국을 통일했는지 내가 듣지 못하였다. ...

세종 9년 세종대왕 단군과 삼국시조의 위패를 같이 둘 지의 여부 관련 회의내용 중 일부인데, 세종대왕의 단군조선에 대한 유일한 언급인 것 같습니다. 실제, 단군조선은 삼한을 포함하여 제부족을 아울렀으나, ‘통치’의 형태가 아닌 제후국의 ‘연맹’의 형태로, 문화는 서로 공유하였으나, 직접적인 통치의 형태로서의 통일로 보는 것은 옳지 않을 것입니다. 기자조선이 규원사화에는 이름 조차 거론되지 않고 부도지에는 겨우 이름만 거론되는 것도 이 이유에서일 것이며, 삼한에서는 부도지가, 만주 이북에서는 규원사화가 개별적인 특성을 갖고 단군 이전의 역사를 기록한 것은, 상호 간섭 없이 역사가 저술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군 조선 때는 이름을 아사달산이라 하였고, 신라 때에 궐산(闕山)로 고쳐 불렀으며, 그 때 문화현을 처음으로 궐구현(闕口縣)으로 이름하였습니다. ... 재의 중허리에 신당이 있는데 어느 시대에 처음 세웠는지 알 수 없으며, 북쪽 벽은 단웅 천왕, 동쪽 벽은 단인 천왕, 서쪽 벽은 단군 천왕이니, 문화현 사람들은 항상 삼성당(三聖堂)이라 부릅니다.  
이는, 환인, 환웅시대의 궐천 년을 의미할 것입니다. 1궐(闕)년은 1만 년을 뜻한다고 합니다.
규원사화에서 단군 이전의 환웅시대를 궐백 년 또는 궐천 년으로 산정하고 있습니다. ... 태고의 처음에 혼돈이 개벽하여, 먼저 하늘이 생기고 나중에 땅이 생겼으며, 이미 천지가 있은 연후에 기가 화하여 사람이 태어났습니다. ... 어찌 수십만 년 뒤의 요임금 때에 다시 기가 화하여 사람이 생겨나겠습니까. ...

세종 10년 우의정 유관  ‘천지가 생기고 수십 만 년’ 은 규원사화의 ‘또 십만 년 ... 또 십만 년’ 의 시간의 폭과 같습니다. 이는 중국신화의 연대가 아니며, 규원사화가 씌여지기 전이어서, 세조실록에 나오는 ‘조대기’ 에서 인용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세년가에, 단군이 처음에는 평양에 도읍하여 후에 백악에 도읍했으며, 은나라 무정 8년 을미에 아사달산에 들어가 신이 되었는데, " 1천 48년 동안 나라를 누리고, 지금도 사당이 아사달에 있네." 라고 하였습니다. ...

세종 18년 전 판한성부사 유사눌 위의 요임금~무왕의 시간과 비교하면, 1백 9십 년의 공백기간이 있습니다. 이는 부도지의 '백년 동안 나오지 아니하니' 의 ‘백년’ 과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즉, 기자조선은 통치자가 공석인 조선에 들어와 나라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우리 동방은 단군 조선이 당요 때에 시작하였고, 기자 조선은 주 무왕 때에 봉하였으니, 군신 상하와 예악 문물을 유지하여 전해 온 것이 오래이나, 문적을 전함이 대개 적고 고려의 사적 또한 잃은 것이 많으니, 이는 분명 널리 보관하지 않으면서 병화를 만난 탓이니 참으로 한탄할 일입니다. ...

세종 21년 사헌부 상소 단군 조선 때 나라가 시작되어 문적이 유지되어 전해졌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본래 삼조선의 옛 도읍으로 당요 무진년에 신인이 하늘로부터 박달나무 아래에 내려와 나라 사람들이 세워 임금을 삼았다.평양에 도읍하고 단군이라 불렀으니, 이것이 전조선(前朝鮮)이요,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를 이기고 기자를 이 땅에 봉하였으니, 이것이 후조선(後朝鮮)이다. 그 41대 손 준에 이르러, 연나라 사람 위만이 망명하여 무리 천여 명을 모아 준의 땅을 빼앗아 왕검성에 도읍하니, 이것이 위만 조선이다. 그 손자 우거가 조명을 잘 받들지 아니하므로, 한무제 원봉 2년에 장수를 보내어 이를 치고, 진번.임둔.낙랑.현도의 사군으로 정하여 유주에 예속시켰다. ...

세종실록 지리지 평양부 평양에 도읍한 단군의 전조선과 기자의 후조선 41대, 위만조선, 한사군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추측하건대, 한사군의 위치는 부여와 삼한을 제외한 평남, 평북, 요동반도, 발해 북부 지역일 것입니다. 단군조선의 수도는 모두 네 번 옮겼으니, 위의 평양은 그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문적은 단군 시대로부터 본조에 이르기까지 역력히 상고할 수 있으니, 다른 번국 요.금.서하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세조 12년 대사헌 양성지 분명, 우리나라의 문서.서적은 단군시대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역력히 상고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단군이 요와 함께 즉위한 때부터 기자 조선.신라가 모두 1천 년을 누렸고 전조의 왕씨 또한 5백 년을 누렸습니다. ... 하나의 나라를 이루어 3천 9백 년이 되었습니다. ...

성종 12년 남원군 양성지 ‘역력히 상고할 수 있다’고 한 인물에 의해 3천 9백 년의 연도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세조 13년이 1481년이므로, 3천 9백 년 전이면 기원전 2419년이 됩니다. 현재의 추정과는 86 년이 틀립니다만, 이는 당시의 연도를 세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넉넉히 잡아서 3천 8백 년에서 10년 이상 초과하면 3천 9백 년으로 셈하는 지도 ...) 우리 동방에 나라가 있게 된 것은 상고 시대부터인데 단군이 맨 먼저 나왔으며, 기자가 동쪽으로 건너 온 이후로 삼한으로 나뉘고 구이로 흩어져 있다가,신라와 고려 시대에 들어와 비로소 하나로 섞여 살게 되었습니다. ...

정조 23년 지중추부사 홍양호 미루어보건데, 단군조선이 1천 년, 이후 기자조선이 건국된 이후로 제후국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삼한과 기자조선으로 분리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성종 뒤로는 단군 관련 글은 새로운 내용이 거의 없고 사당을 수선한 기록이 대부분이니, 아마도 선조 때 이후로 왜란.호란을 겪으면서 서고가 불타 버리면서 단군 관련 서적이 소실된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려시대 때는 자료가 많이 소실되어서인지 정인지가 다시 펴낸 고려사를 참조해 보았으나, 단군 관련 기록을 거의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송나라나 금으로부터의 글에 기자조선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부여를 계승한 고구려를 계승했다면, 당연히 고조선의 역사를 끌여들어야 할 고려였으나, 그렇지 못했던 것은 아마도 후고구려, 후백제, 신라에 대한 견제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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