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하늘에 제사 지내기 위해 단(壇) 쌓아
창3장 인간의 하나님 떠난 타락사건은 인간을 모든 자연만물로부터 개인은 물론 가정 가문 지역을 이루는 인간의 영혼을 자유롭지 못하게 했다. 원구단 혹은 환구단은 선사부터 현재까지 인간의 영적세계와 관련된 영적 활동을 알 수 있는 국가적인 신앙체계이다. 왕권의 신성성과 초월성을 강조하며 국가의 존엄성과 영원성을 과시하려는 국가공동체의 영적활동의 소산이었다.
원구단은 천자(天子)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제천단(祭天壇)을 말하는데 환구단(?丘壇), 원단(圓壇) 또는 황단(皇壇)이라고도 한다. 원구단은 전통사회에 살던 사림들의 세계관 우주관이 담긴 구조물이다. 제천단은 고대부터 있어 지신(地神)에게 제사하는 사직(社稷)의 단(壇)을 방형으로 한 것과 달리 천신(天神)에게 제사하는 단은 원형으로 쌓았던 데에서 둥글다는 의미의 원구단(圓丘壇), 환구단(?丘壇)으로 불리어왔다. 자연숭배신앙이 총집합된 의미를 갖고 있고 전통국가의 존재기반이며 왕실의 근원을 설명하는 이념을 제공하는 곳이다.
고대국가 때부터 제천의식이 행해졌으나 유교적인 예(禮)의 관념에 따라 제도화된 원구제는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부터 실시되었다. 고려 성종 때 새로운 지배체제 확립을 위해 제도화하였다.
원구제는 《고려사》에는 고려 성종(981∼997) 때부터라고 전해진다. 고려왕조가 그 후기에 이르러 원제국의 직접적인 압제 하에 놓이게 되면서도, 천자국 만이 행하는 제천의례의 혁파론을 발의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기록에 남겨진 바로는 충렬, 충선, 충숙, 공민 왕대를 계속하여, 연례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종묘, 사직과 아울러 원구에 대한 제례를 거행해오고 있었다. |
고려의 원구제는 중국의 이른바 천자국의 원구제와 같았다. 제사대상은 5방의 천신뿐만 아니라 그 전체 위에 군림한다는 호천상제(昊天上帝)도 포함했다. 그러나 고려 말 배원친명정책(排元親明政策) 이후 황제만이 하늘에 제를 지낼 수 있다하여 원구제는 폐지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태조 3년인 1394년과 세종 원년인 1419년에 ‘원구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태조 3년 8월 21일 예조에서“…삼국 시대 이래로 원구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기곡과 기우를 행한지 이미 오래 되었으니 경솔하게 폐할 수 없습니다. 사전에 기록하여 옛날 제도를 회복하되 이름을 원단이라 고쳐 부르기 바랍니다.”고 하여 임금이 그대로 천제를 지내게 되었다. 세조는 천제를 나라의 최대 행사로 제도화하여 세조 3년인 1457년부터 원구단 설치 및 관리기관인 원구서를 두고 중국과 같이 매년 정월 15일에 원구제를 거행하였다. 그러나 ?천자가 아닌 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옳지 않다는, 중국의 압력과 사대주의자들의 강압에 의해 1464년 ‘원구제’를 마지막으로 중단 되었다.
지금의 원구단은 1897년(고종 34) 고종의 황제 즉위식과 제사를 위해 옛 남별궁 터에 원단을 만들어 조성한 단지이다. 조선을 대한제국이라 하고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여 제천의식을 봉행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원구단이 다시 설치되었던 것이다. 화강암으로 된 기단 위에 3층 8각 지붕의 황궁우(皇穹宇)를 1899년에 축조하고 신위판(神位版)을 봉안(奉安)하였다. 1902년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하는 석고단(돌북)을 황궁우 옆에 세웠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원구단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조선 호텔을 건축했다. 현재는 화강암 기단 위에 세워진 3층 8각정 황궁우(皇穹宇) 유적만 전해오고 있다. 원구단은 용어에서 하늘을 제사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자연숭배와 다양한 종교의식이 합쳐진 종교복합적인 구조를 가진 신앙에서 비롯된다.
첫째, 하늘 숭배신앙이다. 원구(圓丘)로 표현한 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전통적인 원이상천(圓以象天)이라는 관념에 따라, 하늘을 상징하는 제단의 형태를 둥근 모양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북쪽의 벽은 원형, 남쪽의 벽은 사각형으로 원형은 하늘을 상징하고 사각형은 땅을 상징한다. 천원지방(天圓地方 :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이다.)이라는 전통우주관에 부합하는 것이다. 원구단의 제례(천자, 제천 지례)는 제국의 황제와 하늘의 천신, 지신, 해와 달, 별, 풍, 우 등 우주의 자연 질서를 주관하는 여러 신들과 소통하여 제국의 안녕과 영속을 기원하는 국가 제일의 주요행사였다.
둘째, 용신숭배신앙이다. 제단에 오르는 계단, 하늘의 본음을 낸다는 악기인 석고(石鼓)의 몸체에 용무늬를 새기고 있다. 이는 조선 말기 조각의 걸작으로 꼽히지만 원구단의 제사대상이 계시록 12장 9절의 주인임을 밝히고 있다. 말씀이 하나님인데 소리의 본질을 상실한 하나님 떠난 인간의 영적무지가 드러나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셋째, 오행사상이다. 《고려사》에 의하면 서기983년인 고려 성종2년 정월에 황천상제, 흑제, 적제, 청제, 백제, 황제의 오방위의 신위와 그 전체 위에 군림한다는 호천상제를 두고 왕이 친히 ‘원구제’ 를 지냈다고 전한다.
넷째, 조상숭배신앙 시조숭배신앙과 관련이 되고 있다. 고려 성종 2년 신미에 임금이 원구에서 풍년을 기원하고, 태조의 신위를 배향하였다고 전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늘숭배로 결국 제주인 왕, 왕실의 시조와 조상이 천손족임을 내세우며 실질적인 신성성과 권위를 과시하는 것이다.
다섯째 유교정치이념과 밀접하다. 고대국가 때부터 제천의식이 행해졌으나 유교적인 예(禮)의 관념에 따라 제도화된 원구제는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부터 실시되었다. 고려 성종 때 새로운 지배체제 확립을 위해 제도화하였다. 이는 왕권의 초월성과 국가의 권위를 강조하려는 국가의지의 소산이었다. 조선왕조 세조때 국왕이 면복을 갖추어 입고 등단하여 호천상제, 황제지위 및 태조 위에 친히 삼헌하고 대명성 및 풍, 운, 뇌, 우위에는 왕세자가 삼헌하고, 야명성 및 동서남북의 해, 악, 독, 산천위에는 영의정 정인지가 삼헌하는 절차를 취하였다고 전하는 내용은 유교정치이념보다는 자연숭배신앙이 저변에 놓여있음을 시사한다. 왕, 왕세자, 신하가 제에 참여하여 유교정치이념이 제의공동체 중심으로 구현되고 그 아래 국가가 존재하고 운영되었음도 알 수 있다.
여섯째, 자연현상을 숭배하며 별자리숭배신앙도 원구단의 구성에서 잘 나타난다. 황천상제위는 단의 제 1층 북쪽 동편에 있어 남향하고 있으며 황지지위는 단의 제 1층 북쪽 서편에 있어 남향하고 대명성, 야명성위는 각기 제 2층의 동, 서에 있고 북두칠성, 오성, 28수, 주천성신, 운사, 우사, 풍백, 뇌사, 오악, 오진, 사해, 사독, 명산, 대천, 성황, 사토위는 제 3층에 있는데 북두칠성 이하 주천성신과 악, 해, 명산, 성황은 동편, 나머지는 서편에 배열하였다.
일곱째 건축지는 풍수사상과도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하늘에 제를 지내던 장소가 여러 곳에 있는데 모두 지기가 강한 생기처(生氣處)라고 전한다. 원구단 터도 기가 상당히 센 곳으로 고종황제가 하늘에 제를 올리던 원구단과 황궁우, 석고단(石鼓壇)이 있었으나 일제가 조선의 지기를 막으려고 원구단을 헐고 호텔을 지었다고 전한다.
하나님을 떠난 영적무지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모르고 여러 가지 종교를 만들어 섞고 구원의 길을 찾아보지만 지배층 지식인조차 이 문제를 해결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구열강과 서구문화가 밀려오던 개화기에 혼돈된 상황을 극복하려고 국과와 왕실의 권위를 위해 세운 원구단이 결국 대한제국의 멸망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성경만이 말하고 있다. 힘이 없어 식민지화되어 지기를 빼앗긴 것처럼 보이는 한민족이나 현재 일본의 영적상태 역시 우리의 처지와 다를 바 없다. 망국의 흔적으로 남아 우상숭배하고 잡신숭배 귀신문화의 의미와 결과를 설명해주는 좋은 사례이다. 왕의 상징인 커다란 관이 받침위에 놓여 있는 모양으로 최고의 왕이라는 뜻의 皇을 사용하여 황단(皇壇)이라고도 불리는 원구단은 황제 즉 국가지도자가 가야할 길을 알려준다.
모든 인간의 현주소는 하나님을 모르고 언약을 상실한 채 무한의 공간 하늘을 막연하게 쳐다보며 주위 환경 속에서 반복적인 영적혼돈과 방황 속에 있다. 정복해야할 자연만물과 귀신섬기는 전통이 보존해야할 가치 있는 문화인양 상품화되고 떠드는 무지한 자들의 소리가 한민족의 공허한 가슴을 채우고 있다. 복합적인 종교구조 속에 빠져 영적 어두움을 헤매며 후손들에게 언약을 깨뜨리고 선악과를 따먹으려는 탐심과 함께 창 3장사건의 문제를 지금도 후대에게 대물림하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에 직접 개입하신 이유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 예수로 오신 것은 이 땅의 인류를 흑암 공허 혼돈 속으로 몰아넣는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함이다. 영적 무지 속에서 자신을 모른 채 전통이라는 문화의 홍수 속에 있는 전 세계 인류에게 말씀이 육신 되어 오신 그리스도 예수의 생명을 당연히 전해야 한다. 하나님이신 말씀 속으로 인도하여 생명구원의 증거 있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만 인도받고 구원의 축복을 누려야 할 시급한 시점이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골1:16-17)
/21세기 민족ㆍ세계 문제 연구소 |